중국 중앙정부 홍콩 정부에 ‘국가안전법’ 제정 압박
캐리 람 행정장관 재선과 정치 행보 위해 중국 신임 필요
홍콩 시민 여론이 가장 중요...SCMP 로 기자, “우산혁명이 남긴 피로, 홍콩인들 다시 거리로 나오긴 힘들 것”
▲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 정부에 홍콩 기본법 제23조를 완성하기 위한 '국가안전법' 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월 1일, 홍콩 행정장관에 취임한 캐리 람(Carrie Lam). 행정장관 선거 당시, 중국 중앙정부의 지지를 받았던 그녀는 홍콩 시민의 지지를 받은 존 짱(John Tsang) 전 재정사장을 제치고 제5대 홍콩 행정장관에 취임했다.
취임 후 5개월간 람 장관은 정치적인 이슈보단 부동산 문제와 환경 문제 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존, 친중 인사로 분류되며 홍콩 시민의 우려를 샀던 그녀가 사회개혁과 함께 친서민 정책을 펼치자 시민들은 점차 그녀를 향한 마음을 열어왔다.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 논의와 ‘국가안전법’ 제정과 같은 굵직한 정치적 이슈는 홍콩 행정장관에게 넘어야만 하는 산과 같지만 람 장관은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기’를 기다린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어쩌면 그 ‘적절한 시기’가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 지난 18일, '지금이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기 위한 완벽한 시기'라는 논설을 게재한 SCMP 알렉스 로 기자 (SCMP 갈무리)
▲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우)과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좌)의 회담. 람 장관은 지난 15일, 시 주석과의 회담 후, “나는 홍콩 행정장관으로서, 국가안전법 제정을 위한 조건을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SCMP 갈무리)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알렉스 로(Alex Lo) 기자는 지난 18일, ‘지금이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기 위한 완벽한 시기’라는 논설을 통해 홍콩이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주장했다.
캐리 람 장관은 지난 15일,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회담 후, 인터뷰를 통해 “나는 홍콩 행정장관으로서, 국가안전법 제정을 위한 조건을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로 기자는 그간 정치적 이슈를 차선에 두었던 람 장관의 이번 인터뷰는 ‘기존 람 장관의 태도를 뒤집는 것’이라며,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 중앙정부가 람 장관에 국가안전법 제정을 서두르라는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안전법은 홍콩 기본법 제23조를 보충·완성하기 위한 법안으로 기본법 제23조를 위배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범위를 규정한다.
기본법 제23조에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역·분리·선동 및 반란 또는 국가 누설에 대한 금지와 외국 정치단체의 홍콩 내 활동금지, 홍콩 정치단체와 외국 정치단체 간 연계 금지를 명시하며 이에 관련된 제반 세부규정을 홍콩 정부가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같은 조항을 가진 마카오는 이미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기본법 제23조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가하고 있다.
로 기자는 중앙정부의 압박이 캐리 람 장관에게 손해보다는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안전법 제정을 완수하면 중앙정부는 람 장관에게 두터운 신뢰와 함께 수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람 장관은 이를 바탕으로 행정장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람 장관이 국가안전법 제정에 실패하면 “람 장관의 선배격인 앞선 4명의 행정장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될 것”이라고 로 기자는 덧붙였다.
국가안전법이 제정되려면 기본법상 3단계의 절차가 필요하다. 홍콩 입법회 내 2/3의 지지와 홍콩 행정장관의 동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홍콩 입법회에는 민주파 성향의 위원이 1/3에 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가 국가안전법 제정을 통과시킬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캐리 람 장관이 결단한다면, 행정적인 절차는 수월하게 풀릴 전망이다.
다만, 간단한 절차에도 국가안전법 제정이 번번이 무산됐던 것은 시민의 반대 때문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국가안전법이 ‘정치 탄압의 도구로 남용될 것’이라며 번번이 법 제정을 반대해왔다.
앞서 국가안전법 제정을 시도했던 지난 2003년에는 거리로 나선 약 50만 시민의 반대 시위로 법 제정이 끝내 무산됐다.
하지만 로 기자는 불과 3년 전, 수십만의 시민이 거리로 나섰던 우산혁명이 실패하며, 민주파 인사 다수가 수감된 현 상황이 “국가안전법을 제정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말했다.
민주파 인사 다수가 수감된 것은 물론, 다수의 시민이 겪었던 대규모 시위로 인한 피로가 해소되지 않은 지금, 시민들이 또다시 거리로 나와 시위를 펼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캐리 람 행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5년 임기로 최대 1회 재선이 가능한 행정장관직을 원활히 유지하고 임기 후에도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중국 중앙정부의 신임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최소 4년 반에서 최대 9년 반이라는 임기를 남긴 람 장관이 내부적으로 홍콩 시민의 민심을 잃는다면, 행정장관으로서 그녀가 안게 될 숙제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중국 중앙정부의 신임과 홍콩 시민의 민심이라는 딜레마 속에 캐리 람 행정장관과 홍콩 행정부의 행보가 주목된다.
[홍콩타임스 한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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