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1)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그루지야의 국경이 가까워오자 저 멀리 동북쪽 바다 건너 웨딩드레스처럼 곱고 아련한 하얀 빛깔의 코카서스 산맥이 펼쳐져 보인다. 영어로는 코카서스, 러시아어로는 캅카스라 불리며 동양과 서양을 가르며 흑해에서 카스피해까지 뻗어나가는 장대한 산맥이다. 이 지역에는 소위 코카서스 3국으로 불리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자리한다. 이 지역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예로부터 다채로운 문화가 교류를 하고 여러 민족의 격전지가 되었던 유라시아 역사의 주 무대가 되었던 곳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곳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를 떠받쳤던 기둥이라고 믿었던 코카서스, 다만 우리는 이곳을 세상을 창조한 신들이 자신들이 살기위해서 예비해둔 땅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코카서스의 신비로운 풍광을 연모(戀慕)해왔을 뿐 막상 짐을 꾸려 여행하기에는 아직도 먼 나라이기만 했고, 나의 이번 일정에도 원래 들어있지 않은, 어찌 보면 신들의 선물처럼 내게 주어진 일정이 되어버렸다.
터키 국경을 넘어와서 서에서 동으로 달린지 51일 만에 그루지야로 들어왔다. 연상의 여인에게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나는 그곳의 매력에 푹 빠지고 압도당했다. 진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터키의 마지막 도시 사르프에서 송교수님과 헤어졌다. 지난 경험으로 보아 사람만 출입국수속을 밟는 것보다 차량출입국수속이 더 까다로워 차를 먼저 출발시키고 나는 뒤따라가기로 하였다. 나는 수속을 간단히 마치고 국경을 넘어오니 택시와 미니버스로 북적거리는 것이 지금까지 국경을 넘은 풍경하고는 사뭇 달랐다. 수많은 환전상은 보였으나 변변한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으로는 관광객보다는 많은 보따리장수들이 넘나드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발 상황이 벌여진 것을 알았다. 시간이 많이 지체(遲滯)되었는데 미리 약속한 곳에 송교수님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보니 다행히 터키에서 산 심카드가 아직은 작동을 하는 모양이다. 카톡전화를 거니 터키 국경을 넘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운전자가 같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운전을 하여 문제가 생긴 것이다. 관세청에서는 일단 사무적으로 차량절도로 간주하고 차량 통과를 시켜주지 않는 것이다. 송교수님은 우선 한국 영사관과, 얼마 전에 면담을 했던 악차아밧 시장실과. 트라브존 시장 등에게 연락을 했지만 오늘 중으로는 해결 될 것 같지 않다.
내 모든 짐이 차에 실려 있었지만 헤어질 때 혹시 몰라서 윈드브레이커를 챙겼고, 나는 항상 핸드폰은 들고 허리주머니에 여권도, 돈을 차고 뛰었다. 그것이 이 돌발 상황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일단 빵 몇 조각을 사고 숙소를 수소문하여 찾았다. 송교수님은 한참 후에 차를 놓아두고 국경을 넘어와 자고 아침에 다시 차를 찾으러 갔고 나는 샌디에이고에서 지원차량 운전을 위해 오는 박호진씨를 만나러 배낭을 메고 바투미 센트럴 역까지 걸어갔다.
비행기를 타고도 30여 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길을 평화마라톤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찾아와 준 것이다. 그의 가방 속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정성껏 담근 김치와 고추장, 열흘을 푹 고았다는 도가니, 삼겹살까지 있었다. 평화통일의 절절한 염원이 녹아 있는 음식을 호텔 주방을 잠시 빌려 요리해서 오랜만에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사실 터키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였지만 그 음식에까지는 정을 주지 못했었다. 음식에 관한한 내 사랑은 오직 한국음식이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 셋은 조우(遭遇)를 할 수 있었다,
유라시아의 숨겨진 보물 그루지야는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기원지이며,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아는 자’의 뜻으로 그는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신의 모습을 본떠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 신을 가장 많이 닮은 인간들은 나약해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 아파하던 그가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선사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불의 사용으로 인간의 삶은 더 윤택해졌지만 제우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신의 권위였다. 프로메테우스는 분노한 제우스에 의해 이곳 코카서스 산맥의 카즈베기의 설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헤라클라스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는 독수리를 물리치고 사슬을 풀어준다. 그의 변변치 않은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아는 자‘의 뜻으로 두 형제의 이름이 프롤로그, 에필로그의 어원이 되었다.
유일신을 믿는 가장 오래되고 진화적인 종교 조로아스터교는 어둠을 몰아내고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는 불을 숭배한다. 조로아스터 신자들에게 불은 빛이자 생명이고 희망이다. 그들에게 불이란 내면의 깨달음이고 신이 인간에게 준 지혜와 용기이다. 이 종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종교의식에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는 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에서는 영혼은 영원하지만 육체는 죽으면 불결한 것이어서 흙이나 물, 불과 접촉할 수 없다. 그러므로 토장(土葬)이나 화장(火葬)은 할 수 없고 주검은 땅과 분리된 높은 곳에 올려져 독수리에게 뜯어 먹히게 했다. 백골만이 아래로 떨어져 탑처럼 쌓이니 그들은 이 조장(鳥葬)의 장지를 ‘침묵의 탑’이라 부른다. 새는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운반하는 매개체이며 영물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과 영웅들 중에 인간들에게 가장 많이 세세토록 칭송받는 진정한 영웅이다. 인간의 문명은 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견딜 수 없는 침묵과 고통, 날카로운 독수리의 부리, 바위와 사슬이 묻는 죄라고는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인간의 자유과 개혁의 다른 이름이고 부당한 고통을 이기는 고결한 정신이며, 억압에 당당히 맞서는 투쟁의 상징이다.
올림픽 경기는 신을 위한 행사였다. 그리스인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경기장에 불을 피운다. 이것이 성화(聖火)의 시작이다. 올림픽 성화는 엄숙하고 평화로운 불이다. 성화는 신이 선사한 불이지만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니 인간의 불이기도 하다. 평창올림픽의 성화가 봉송(奉送)되는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의 관계를 녹이는 뜨거운 소식들이 희망처럼 들려온다.
수만 년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유라시아를 뒤덮는 평화가 진정 신들의 소유라면, 1만6천km를 달려서라도 평화의 횃불을 훔쳐오고 싶었다. 나는 진정 어둠을 몰아내고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며 평화를 불러오는 불을 숭배한다. 그것이 우리의 빛이자 생명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마음으로 가슴 속에 평화의 불씨를 안고 세상에 온갖 폭력이 종식되고 평화와 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달리고 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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