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는 9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죽음으로 몰았다.
이 사건은 당시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사건의 장본인인 ‘검은 9월단’은 9명의 희생자를 내고도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 테러도 내성을 가지는지,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목적이 달성되던 것들이
이제는 열 사람의 희생으로도 세상은 꿈쩍하지 않는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심장부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상징물이
테러리스트에 의해 공격받던 날, 미국은 자존심마저 공격당했다.
분노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당시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테러를 모의한 편에서 보면 가장 극대화된 성과물이었다.
지난 13일(금) 평화롭던 파리의 주말저녁이 피투성이가 됐다.
이날 숨진 희생자는 132명.
살아남은 자들은 끔찍했던 순간을 ‘대학살’ ‘전쟁터’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의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유럽 역시 ‘파리의 9·11’이라는 이번 테러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인 또한 테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라 잃은 설움이 가슴에 복받치고,
주권을 빼앗긴 분노가 뼈 속까지 사무쳤던 독립투사들은
목숨을 불사한 저항운동을 벌였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삔 역에서 이토오 히로부미에게 총구를 겨눴고,
윤봉길 의사는 홍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졌으며,
이봉창 의사는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은
수많은 친일파 제거와 일본 영사관 폭파 시도 등을 진두지휘했다.
일본의 극우파는 항일운동을 테러리즘의 범주 속에 넣고
이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로 단정한다.
그렇다고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기록하는 일본의 역사교육에
큰 소리칠 입장도 못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뉴라이트계열 역사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엔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이 ‘테러활동’을 했다고 기록돼 있으니 말이다.
무고한 수천명을 희생시킨 악랄한 테러분자들과
나라를 되찾겠다는 숭고한 가치를 지닌 선조들의 독립운동을
같은 선상에 놓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테러는 본질적으로 강자에 대한 약자의 공격행위’라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비춰볼 때
슬프게도 이 둘 사이의 경계선이 묘하게 겹쳐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테러리즘 연구가는 “테러리즘이 존재하는 구조적 원인은 불평등”이라고 정의했다.
또 “무차별적 보복은 더 큰 테러리즘을 부를 뿐”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지구촌은 반테러리즘의 결의로 뜨겁다.
자국민에 대한 광기어린 테러에 격분한 프랑스는
연일 IS 심장부를 향해 대규모 공습을 가하고 있다.
16일(월)에는 미국과 프랑스 동맹국들이 주도하는 국제 연합군이
IS의 석유시설을 집중 파괴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IS가 미국을 테러대상으로 예고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9·11 테러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한 뉴욕시는
테러 진압 특수 훈련을 받은 경찰 100명을 뉴욕 시내 주요 지점에 배치했다.
「‘눈에는 눈’(정책)은 우리 모두를 눈멀게 한다.(An eye for eye leaves us all blind)」
9·11 발발 직후 미국의 한 평화운동단체가 미국 언론에 보낸 호소문 내용이다.
보복에 보복을 더하는 끝없는 보복전쟁으로
민간인의 희생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한번쯤 돌이켜 생각해봐야 할 말이다.
우리 모두를 눈멀게 하는 피의 악순환을,
테러를 또 다른 패권으로 대항하는 폭력의 악순환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를 말이다.
[뉴스넷] 최윤주 발행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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