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주부터는 그 동안 우리 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양을 벗어나 서양 인문학으로 넘어 가려 한다. 그래서 첫 책을 고르는데 조금은 신중을 기했다. 서양 인문학의 처음 시작을 종교적 색채가 깊은 철학 책을 택했다. 결과적으로는 무거운 것을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식탁에서 대화의 주제로 금기시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 그것은 바로 여자, 정치 그리고 종교다. 여자 문제는 반드시 사단(事端)이 나고, 정치는 좌우(左右)로 갈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종교는 영원이 정답이 없는 문제라서 즐거워야 할 식탁을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 아니 종교문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 섣불리 서평을 내는 것이 다소 주저했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이기에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서점에 가서 팡세(Pensees)를 찾으니 두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인문학 코너와 종교 코너.
두 책을 번갈아 비교하다가 종교 코너에 있는 박철수의 ‘파스칼의 팡세(대장간- 2011)’를 택했다.
팡세는 대영 백과사전을 펴 낸 브리태니커(Britanica)에서 위대한 책 100선 중 36번째에 선정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성경 다음으로 팡세를 좋아한다는 현직 목사님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팡세가 너무 난해해 접근하기가 어렵고 번역이 조잡해 주옥 같은 글들을 주석을 달아 책을 냈다고 했다. 이 책을 디딤돌 삼아 본문전체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이 책은 팡세의 전체 번역서는 아니다. 일부 내용만 발췌한 것으로 파스칼이 전하려는 메시지의 진수를 맛보게 하고 이것을 계기로 전역을 읽고 싶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무릇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당시의 환경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파스칼(Blaise Pascal)은 우리는 단순히 수학자로만 알려져 있다. ‘파스칼의 원리’로 유명한 그리고 간혹 명언을 많이 한 철학자로도 알려져 있는 것이 일반 상식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역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라는 명언은 지금도 간간히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를 만든 사람(정확히 말하면 계산기를 만든 사람), 공용합승 마차를 창안하고 운영한 사람, 세일즈맨, 금욕주의자, 자선 사업가 그리고 성경연구가 등 39세의 짧은 일생에 너무나도 다채롭다. 그는 프랑스의 과학자, 종교사상가, 문학자로서 그의 부친 에티앤 파스칼(Etienne Pascal, 1588 ~ 1651)은 세무 관계의 지방행정관이었는데, 수학과 기타 과학에도 조예가 깊어, 당시의 교양 있는 법복 귀족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 때에 데카르크의 영향이 강한『원추곡선시론』을 발표(1640)하고, 사영(射影)기하학에서의 <파스칼의 정리>를 밝혔다. 페르마와 함께 확률의 문제를 논하고, 그 성과로서『수삼각형론』(1665년 간행)을 저술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인『팡세』는 사후에 출판되었다.
우리는 서양의 합리주의의 양대 거목으로 알려진 데카르트(Rene Descartes)와 파스칼을 꼽는다. 데카르트는 코지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이다.
하지만 파스칼은 데카르트나 몽테뉴를 혐오했다.
‘수상록: 에세이’를 쓴 몽테뉴 (Montaigne, Michel De)의 삶은 사라 베이크웰(Sarah bakewell)의 ‘어떻게 살 것인가(책 읽는 수요일: 2012)’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는 이성(理性)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고, 유대교를 비롯한 타 종교를 무시하는 태도를 편협적인 종교관을 지녔다. 지나친 광적인 기독교 숭배주의자 같다. 그래서 책 내용에는 좋은 명언들도 많지만 대부분이 하나님과 기독교주의적인 글이 대부분이다.
한편으로는 섣불리 원전을 읽다 도중하차를 하느니, 비록 일부 발췌본이지만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서 이 책을 고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한쪽으로 치우친 천재로서, 다시 말해 오직 기독교만이 종교라는 생각으로 다른 종교를 부정하는 독선적인 신앙인이다. 그저 우리에게 명언을 남긴 철학자로, 그리고 위대한 수학자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나는 파스칼 보다는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살아가는 평범한 비 기독교인으로서 데카르트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칼럼니스트 김영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