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행진_1985년)
1980년대 중후반, 젊은 층은 ‘들국화’에 열광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가 멈출 날이 없었던 당시,
긴 파마머리가 불량스럽다는 이유로
TV 출연이 금지됐던 들국화의 ‘뭔가 다른’ 노래는
매캐한 최루가스를 씻어내듯
묵은 체증을 단숨에 털어내는 톡쏘는 탄산음료 같았다.
들국화의 노래가 세상을 뒤흔든 그 때,
한국사회에는 두 갈래의 물줄기가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살인진압한 독재정권이
프로야구단을 만들고 교복과 두발자율화를 실시하고
86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유치라는
전방위적인 유화책을 내놓은 것이 하나요,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민초들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내고
투표를 통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드는 ‘승리’를 일궈낸 것이
또 다른 하나다.
그렇게 1980년대 말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구가
그저 꿈이 아니라
내일의 태양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확신했다.
그때도 들국화는 노래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
내일은 해가 뜬다(사노라면_1987년)
들국화의 노래들은 젊은 감성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물론 감각적인 연주와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
무심한 피아노 소리와
심장을 저격하는 기타소리가 없었다면
그 노래들이 지금처럼 기억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노래의 힘을 깨닫는 요즘이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 덕이다.
‘이문세의 별밤’에 엽서를 보낸 후
카세트 테잎에 녹음할 준비를 하느라
공부가 뒷전이었던 숱한 밤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그 시간들이 한걸음에 달려온다.
1등 공신은 노래다.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세월을 견뎌낸 노래가
옛추억과 함께 가슴 위로 내려 앉는다.
2015년의 마지막 달을 맞이한 지금,
1980년대 후반의 옛추억과 마주할 수 있음이
마냥 신기할 뿐이다.
한국의 음원차트에 ‘응답하라 1988’의 OST가
상위권을 도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혁이 부른 이문세의 ‘소녀’,
박보람이 부른 동물원의 ‘혜화동’,
이적이 부른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가 대표적이다.
27년전 청춘들의 마음을 빼앗던 노래가,
27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젊음을 살아가는 이들의 귓전을 울리고 있다.
30년 가까이 묵은 노래가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또다시 사랑받고 있다.
시간의 벽을 허물고 세대의 간극을 좁히는 노래의 힘이다.
시간의 숨결을 담은 노래는
잊고 있던 추억을 바로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불러낸다.
그 때의 기억, 그 시절의 사람, 또렷이 기억나는 찰나의 색상까지 말이다.
‘나’의 얘기들이 노래에 실려 묵직하게 다가온다.
드라마 속 또다른 주인공은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나’다.
그들의 추억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
… /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걱정말아요 그대_2004년)
노래가사에 가슴이 먹먹해온다.
왠지 모를 힘이 솟는다.
삶의 응원가가 따로 없다.
한 해의 마지막 시간 앞에서
힘겨운 시간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들국화의 노래를 원없이 들려주고 싶다.
음악에 기대어 삶을 부축받았던 그 때처럼
“걱정말아요, 그대”
“내일은 해가 뜹니다”라며
목청껏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뉴스넷] 최윤주 발행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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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요즘 저도 '응답하라'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저와는 조금 세대가 다르지만 정말 가슴 뭉클하고 짠한 장면과 대사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저는 드라마 보면서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우리 때에는 걸핏하면 학교 문 닫고 휴교가 많았는데요. 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그러셨죠. "얼라, 또 왔네?" 그라고 며칠 동안 마당을 빙빙 돌고 있으면 라디오 방송에서 '핵교 문 열었으니 올라들 오거라!' 그러면 부지런히 고속타고 서울로 갔죠. 그 시절이 눈이 시리도록 그립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데이~
1988년은 제가 대학교 2학년때였습니다. 인생의 꼭지점이었던 그 시기에 최루탄을 벗삼아 살았으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시기죠. 이 칼럼을 쓰면서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추억이 주는 힘이라는 걸 느낀거죠. 추억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요즘 주변에서 하도 '응답하라 1988' 얘기들을 하시길래.. 모처럼 저도 1,2회 찾아 보고 있습니다. ^^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웃음짓게 하네요.
정치적으로는 좀 암울했던 시기였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막 제대해 복학하고 풋풋한 88학번 새내기들하고 벚꽃냄새와 최루가스 가득한 캠퍼스를 누비던 그 시절...
얼마 전 다시 가보았지만, 캠퍼스에서 그 시절의 낭만은 찾아볼 수가 없어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물론 요즘 세대들은 다른 방식의 낭만을 즐기며, 지금 이 시절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
언제나 좋은 칼럼 감사드립니다.
불쑥 현실 속으로 치고 들어온 옛 추억이 너무 반가운 요즘입니다. ^^;; 이부회장님 추억 속의 향긋한 벗꽃내음과 매캐한 최루가스가 달라스까지 전해지는 듯 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