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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한-몽골 수교 25돌,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 ||||||||||||||||||||||||||||||
지금이야말로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요원들과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이 유기적으로 융합하여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을 묵묵히 개시해야 할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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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Mongolia)=Break News GW】 한-몽골 수교 25돌 2015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 해를 결산하는 일은 새해를 맞는 일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제임을 생각할 때에, 한-몽골 수교 이후 지난 한-몽골 25돌을 되돌아보고 향후 새로운 한-몽골 관계를 설계하는 일은 지극히 의미심장한 과업이라고 본다. 이에, 본 기자는 몽골 한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송년회 참석으로 정신없게 될 12월이 오기 전에, 서둘러 이 기회를 빌려, '저무는 한-몽골 수교 25돌,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라는 글로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위한 제언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Ⅰ들머리 바야흐로, 한-몽골 수교 25돌의 해 서기 2015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몽골을 상징하는 낱말을 꼽으라면, 아마, 칭기즈칸, 대초원, 게르(Ger=몽골 전통 가옥) 정도를 꼽지 않을까 한다. 한국 달력에서의 2015년 3월 26일은, 25년 전, 한-몽골 두 나라가 전격적인 국교 수립을 단행한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그랬다. 주지하다시피, 몽골 한인 동포 사회는 지난 3월 26일 목요일에 바야흐로 한-몽골 수교 25돌을 맞았다. 그냥 25년이라고 하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일찍이 수교했던 자유 진영의 여타 국가들과의 상호 교류 연한에 비해 다소 짧은 연한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긴 하나, 그 짧은 기간에 한-몽골 두 나라 간 무역 규모는 무려 140배나 증가했고, 지난해 2014년 한 해 동안 한-몽골 두 나라 사이의 상호 방문객 수치는 10만 명이 넘었을 만큼 한-몽골 두 나라 간 교류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활발해졌다. 참고로, 현재, 몽골에 거주 중인 한민족 구성원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는 바, 첫째, 북한에서 몽골로 파견된 북한 국적의 외교관 및 근로자들, 둘째, 북한을 탈출해 몽골에 불법 체류 중인 북한 출신의 무국적자들, 셋째, 중국을 거쳐 몽골에 정착한 중국 조선족 출신들,넷째, 러시아인과 결혼해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몽골에 와서 사는 러시아 국적의 카레예츠들,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한-몽골 수교 이후, 몽골에 온 대한민국 국적의 재외국민(=또는 한인 동포) 등 크게 다섯 부류이다. 이 다섯 부류 중, 대한민국 국적의 본 기자가, 한-몽골 수교 25돌을 맞아, 굳이 앞에 쓴 네 부류까지, 언급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은 듯 보인다. 요컨대, 현시점에서, 모두 언급하는 것(다음에 기회가 분명히 있을 터이다)은 다소 오지랖 넓게 보이기도 할 터이다. 하여, 다섯 번째 부류인, 한-몽골 수교 이후, 몽골 현지에 온 대한민국 국적의 재외국민으로만, 범위를 좁혀 글을 써가기로 한다. 현재, 몽골 현지에는, 3,500여명의 대한민국 국적의 한인 동포(=또는 재외 국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나, 본 기자의 기록으로는, 한-몽골 수교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몽골로 건너온 온 대한민국 국적의 재외 국민수가 대략 160여명 가량이었다. 몽골 민주화 초기 단계 1990년대 초중반, 즉 생필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그 당시, 몽골 현지 거주 초창기 구성원들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파견 국제 협력 요원들,유학생들,특정 종교 선교사들, 상사 직원들, 공무원 연수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몽골 수교 이후, 1994년 4월 몽골 땅에서 최초로, (이에 앞서 몽골 여인과, 몽골이 아닌,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K씨 내외가 있긴 하지만), 몽골 주재 한인 동포 근로자 최찬 군이 몽골 여성 볼로르마(Bolormaa) 양과 혼인 예식을 올렸다. 한국-미국-몽골 3개국 합작으로 몽골 현지에 세워진 봉제 회사 근로자였던 최 군이 몽골 국적의 여성과 혼례를 치름으로써, 한-몽골 수교 이후, 몽골 현지에서 최초로 공식적인 한-몽골 간 피의 교류가 개시됐다. 몽골 여성 볼로르마(Bolormaa) 양은 최 군에게 떡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덥석 안겨 줌으로써 최 씨 가문의 대(代)를 이어 주었고, 그 아들의 이름은 최한몽(崔韓蒙, 한국과 몽골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음)이 되었다. 반면, 그 당시, 몽골 현지에는, 공들여 쌓아 놓은 몽골 주재 한인 동포의 이미지를 뭉개버리는, 추악한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도 있었음을 굳이 기록해 둔다. 한국산 중고차를 구입해 주겠다면서 수만 달러를 받고 부도를 낸 인간, 몽골인에게 축산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고 언약하고는 일방적으로 파기한 인간,서울에서 구호품으로 받은 물건을 판매한 인간 등 별별 괴상망측한 인간들이 있었다. 아울러, 한-몽골 수교 25돌을 넘긴 지금, 몽골 주재 대한민국 재외 국민이자, 몽골 주재 한인 동포 사회의 일원인 본 기자는, 지구촌에 주재하는 200개가 넘는 대한민국의 해외 공관 중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은 '사고 빈발 지역'이었음을 굳이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지난 25년 간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 두 명과 영사 한 명이 이곳을 거쳐 옷을 벗었다. 사직 배경은 천태만상이었다. 여자를 둘러싼 잡음이 있었고, 몽골 한인회 집단 행동에, 개발을 둘러싼 신경전과 폭로, 사증(査證) 발급 비리, 게다가, 한인 동포 사회에서는 학력 위조 사태에다, 도박 파문 사태도 있었다. 그런 과거 세월 동안, 몽골 한인 동포 사회는 제8대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가 나서서 몽골 주재 한인 동포 아무개 씨를 몽골에서 강제 추방 시키는 기막힌 상황을 지켜보기도 했다.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당신을 수사해 달라고 공문이 왔다. 따지려면 너네 대사관에 가서 따져라”라는 몽골 경찰 관계자의 말을 들었다던 그 몽골 주재 한인 동포의 속내는 어떠했을까? 피눈물을, 그야말로, 이가 갈리는, 피울음을 쏟았을 터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진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 몽골 주재 한인 동포는 기적처럼 몽골 한인 동포 사회 한복판으로 보란 듯이 복귀해, 사업을 재개하며, 현재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반면, 당시의 제8대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음을, 본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한-몽골 25돌의 해를 한 달 정도 남겨 둔, 이 시점에 굳이, 새삼스레, 기록으로 남겨 놓는 바이다. Ⅱ한-몽골 수교 25돌의 몽골 한인 동포 사회의 현주소는? 앞에 쓴 대로, 2015년 3월 26일 목요일로, 몽골 한인 동포 사회는 한-몽골 수교 25돌을 넘겼다. 한-몽골 수교 25돌을 넘긴 현시점에서 본 기자는 독자 여러분께 묻기 전에, 스스로 자신에게 묻는다.“도대체 몽골 현지에서 몽골 한인 사회가 차지하는 위상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1999년 몽골을 국빈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은, 그 해 5월 31일 월요일, 몽골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과 나는, 그리고 몽골 사람과 한국 사람은, 모두 ‘몽골 반점’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몽골 어린이들이 즐겨 노는 제기 차기, 공기 놀이, 실뜨기는 우리 한국 어린이들의 전통 놀이이기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알롱고아(Алун-гуа)’ 설화라든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몽골의 여러분만이 한국의 아리랑 노래를 구성지게 부를 수 있다는 사실들이 우리 두 나라 사이의 친밀감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와 우리 한국민이 어찌 몽골에 대해 친근한 유대감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러한 한-몽골의 역사적, 정서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실질 협력 관계를 더욱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한 것입니다.”
본 기자는 이 말이 진실이라 믿는다. 하지만, 본 기자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라, “이게 정말 진실인가?” 하고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4월 2일 화요일이었다. 제주에 들어오려던 몽골인 관광객 7명이 불법 체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제주공항에서 대한민국 입국을 거부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이틀 뒤, 4월 4일 목요일에는, 이와는 반대로, 대한민국의 몽골 여행객들이 몽골 칭기즈칸국제공항에서 몽골 입국을 거부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갑자기, 한-몽골 관계가 불협화음의 심포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려니 했다. 여기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터인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4월 12일 금요일, 몽골 현지 언론사 몽골린 메데 (Mongoliin Medee) 신문이, ‘No. 070/3667’ 지면에, “대한민국의 새 정부가 대한민국 내 외국인을 출국시키고 있다”’는, 전혀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의 반한(反韓) 보도 기사를 실었다. 상황을 보고 받은, 이태로 당시 주몽골 제10대 대사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이태로 당시 주몽골 제10대 대사는 몽골 언론사의 반한(反韓) 보도 작태의 부당성을 중시하고, 당사자인 몽골린 메데 (Mongoliin Medee) 신문사 본사를 직접 방문, 몽골 언론의 추측성 보도 작태를 엄중 항의해, 결국, 몽골 측의 정정 보도 언약을 기어코 받아내고야 말았다. 몽골 현지 언론사 몽골린 메데 (Mongoliin Medee) 신문은, 자사 지면을 통해, ‘지난 2013년 4월 12일자 No. 070/3667호 지면에, 대한민국의 새 정부가 대한민국 내 외국인을 출국시키고 있다’는 전혀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실었던 점’을 언급하며, ‘일부 대한민국 사람의 부적절한 행동을 과장 표현하여 마치 대한민국 사람 전부의 행동인 것처럼 기사를 작성한 것은 몽골을 대표하는 언론으로서 부적절한 보도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과 몽골의 관계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정정 보도를 내게 되었다’는 내용을 게재해, 이 사건은 일단락 됐다.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요원들과 몽골 한인 동포들은, 이 사건을 통해, ‘몽골 현지에서는 몽골 내 한인 동포에 대한 긍정적 경험보다는 부정적 경험이 일방적으로 퍼져 있으며, 이로 인한 내재된 반한(反韓) 정서가 돌발적으로 반한(反韓) 기사나 반한(反韓)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몽골 한인 동포 사회가 단합하여 주도적으로 한인 동포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몽골 사회에 보여 주고, 몽골 현지에서의 반한(反韓) 정서를 완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 실천할 필요가 있다’는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에, 2013년 6월 18일 화요일, 몽골 주재 한인 동포 19인이 참가한 가운데,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4층 회의실에서, 손정일 당시 사건 사고 담당 영사의 사회로 오후 3시부터 가칭 ‘몽더임(몽골과 더불어 살기 모임)’ 활동 추진 관련 간담회가 2시간 동안 개최됐다.
간담회 한인 동포 참석자들은, 몽골 현지에서의 반한(反韓) 정서 완화를 위한 열띤 의견들을 개진했으며, 실제적으로, 그 후에도, ‘몽더임(몽골과 더불어 살기 모임)’ 활동의 성격, 추진 방향 및 프로그램 도출 등에 대한 논의를 거듭했으나, 구체적인 활동은 추진되지도 못하고, 올해 4월 1일, 이태로 당시 주몽골 제10대 대사의 이임(離任)과 함께 흐지부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지난 2014년 9월부터는 인천 아시아 경기 대회에 참가했던 몽골 권투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에게 부당하게 패했다는 이유로 반한 감정이 일었다. 9월 30일에 대한민국 인천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몽골 한인 사회가 감내해야 할 후유증은 꽤 깊었다. 2014년 몽골 제48회 스승의 날(해마다 10월 5일)을 이틀 앞둔 10월 3일 금요일, 울란바토르 소재 퓨마 임페리얼 호텔(Puma Imperial Hotel) 2층 연회장에서 오후 5시부터 거행된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단 공식 만찬 자리에 본 기자가 앉아 있노라니, 자리를 같이 한 일부 몽골 교수들 입에서 판정 시비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이었다. 일부 몽골 교수들이 입에 올린 판정 시비 문제에 대해, 본 기자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이번에는, 일부 몽골 교수들은 데. 에르데네수렌(D. Erdenesuren=Д. Эрдэнэсүрэн) 한국학과 교수에게 “너네 한국 사람들 왜 그러냐?” 하고 몰아붙였다. 덕분에, 에르데네수렌 교수는 졸지에 한국 사람이 돼버렸다. 더군다나, 그 날은 데. 에르데네수렌(D. Erdenesuren=Д. Эрдэнэсүрэн) 한국학과 교수가 몽골 교육부 장관 표창을 수상한 날이었다. 국제관계학과 먀그마르(Myagmar) 교수가 사태 진화에 나섰으나 소용이 없었다. 본 기자로서는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본 기자는 독자 여러분께 묻기 전에, 스스로 자신에게 묻는다.“도대체 몽골 현지에서 몽골 한인 사회가 차지하는 위상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Ⅲ선봉에 선 몽골한인회장과 적극 지원에 나선 주몽골 대사 본 기자는 일본이 몽골 현지에 건설한 태양교(太陽橋, Sun Bridge, 나르니구르=Нарны Гүүр)를 문득 떠올렸다. 한-몽골 수교 이후, 그동안 대한민국의 조야(朝野)가 몽골에 쏟아 부은 유형, 무형의 투자 내지는 인적, 물적 원조가, 앞으로 100년 간은 몽골 현지에서 일본이 홍보 측면에서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는 일본의 태양교(太陽橋, Sun Bridge, 나르니구르=Нарны Гүүр) 건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건만, “도대체 몽골 현지에서 몽골 한인 사회가 차지하는 위상의 현주소가 이것밖에 아니 되는가?” 도대체 뭐가 잘못 됐는가?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노력이 몽골 현지에서 만족할 만하게 부각되지 않은 것은 도대체 어인 연고인가? 이 글을 쓰는 지금 밤새 내린 눈이 창밖에 쌓여 있고 보니,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좌절감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야 하느냐? 진정 딛고 일어서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냐? 가슴이 한 순간 답답해졌다. 때마침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두 사람 때문에 본 기자는 극적으로 소생(蘇生)했다. 국중열 몽골한인회장과 오송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가 두 주인공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한-몽골 수교 25돌을 맞은 2015년에 각각 신임 몽골한인회장과, 신임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로 임기를 시작한 공통점이 있다. 현재, 국중열 몽골한인회장은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진흥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오송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는 몽골한인회의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에 나선 상태이다. 본 기자의 기억으로는 몽골한인회와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이 이렇게 흉금(분명히, 흉금이라고 썼다. 흉금=胸襟=앞가슴의 옷깃=마음속 깊이 품은 생각)을 터놓고 의기투합해 몽골 한인 사회의 발전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한 적이 솔직히 없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한-몽골 수교 25돌을 넘긴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은 몽골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의 자화상을 스스로 자성해야 함과, 몽골 내에서의 대한민국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위해, “과거는 과거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라는 불굴의 투지로, 몽골 주재 재외 국민들의 인식의 변화와 한인 단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몽골한인회 정관 제4장 19조 1항 및 제 5장 29조에 의거한 몽골한인회(KAIM=Korean Association in Mongolia, 당시 회장 이연상)의 제12대 몽골한인회 회장 선거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총 3시간에 걸쳐 몽골 울란바토르 13구역에 위치한 IUB대학교 체육관에서 거행됐다. 개표 결과, 선거일 현장 투표 278표와 부재자 투표 306표를 합친 총 584표 중, 기호 1번 한완식 후보가 186표(32퍼센트) 획득, 기호 2번 국중열 후보가 383표(66퍼센트) 획득, 무효표 15표(2퍼센트)로 집계돼, 기호 2번 국중열 후보가 기호 1번 한완식 후보를 197표차로 따돌리고 제12대 신임 몽골한인회장에 당선됐다.
결론적으로, 부재자 투표 제도와 경품 행사 진행을 몽골한인회장 선거에 도입한 당시 제12대 몽골 한인회 회장 및 감사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참으로 신선한 것으로서, 투표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겠다. 쌀쌀한 날씨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몽골 한인들은, 몽골 한인회 정관에 나와 있는 한인회 설립 목적인 ‘한인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지원하고, 몽골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자긍심과 활력을 북돋아 주는 활동과 사업을 전개한다’, ‘모국의 발전과 한민족 번영에 적극 동참한다’, ‘대한민국과 몽골 국민의 우호 증진과 민간 외교에 기여한다’ 등의 문구들을 신임 회장이 부디 실현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당연히, 본 기자도 몽골한인회의 회원으로서 제12대 몽골 한인회장 선거에 신성한 참정권를 행사한 바 있다.
참고로, 최종 개표 산출 근거 및 최종 개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최종 개표 산출 근거⟹총 584표(100퍼센트)←부재자 투표 306표(52퍼센트) + 선거일 현장 투표 278표(48퍼센트) ①부재자 투표 306표⟵기호 1번 한완식 후보 90표(29퍼센트) + 기호 2번 국중열 후보 216표(71퍼센트) + 무효 0표(0퍼센트). ②선거일 현장 투표 278표=기호 1번 한완식 후보 96표(35퍼센트) + 기호 2번 국중열 후보 167표(60퍼센트) + 무효 15표(5퍼센트). ☞최종 개표 결과⟹총 584표(100퍼센트)=기호 1번 한완식 후보 186표(32퍼센트) + 기호 2번 국중열 후보 383표(66퍼센트) + 무효표 15표(2퍼센트). 지난 2015년 1월 1일부터 이연상 전(前) 제11대 몽골한인회장에 이어, 2년 간의 임기로, 오는 2017년 12월 31일까지, 몽골한인회 현직 회장 직책을, 취임 11개월을 수행하고, 이제 12개월째에 접어드는, 국중열 현 제12대 몽골한인회장을, 본 기자가 취재 활동을 하면서 자주 접해 보니, 그야말로 믿음직했다.
현재 임기 11개월을 넘긴 국중열 몽골한인회장은, 몽골한인회장 선거 시에 내세웠던 5대 공약, 즉, ①화합 단결 측면의 직능 단체별 교류 활동 확대 및 재정 지원, ②사회 복지 측면의 한국 병원과 연계한 의료 검진 및 의료 혜택 확대 및 스포츠 활동을 위한 체육관 건립 및 동호회 활동 지원, ③권익 보호 측면의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및 몽골 경찰청과 연계한 한인 보호 시스템 구축, ④교육 문화 측면의 다문화 가정 자녀 및 한인 2세를 위한 장학위원회 설립, ⑤재정 자립 측면의 몽골한인회 부설 영리 사업단 구성 수익 사업 실시 등의 실현에 사활을 건 사람처럼, 그야말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각종 한인 동포 단체들(몽골한인회, 몽골한인상공회의소, 민주평통 몽골분회, 몽골한인외식업협회, 몽골 주재 한-몽골 다문화 가정회, 몽골 한인 동포 각종 체육 동호회 등등)의 행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토요한글학교 행사까지 끔찍이 챙긴다. 게다가, 오송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와 수시로 한국의 카카오사(社)에서 서비스 중인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 토크( KakaoTalk)로 연결해 의견을 주고 받는다. 한국 속담에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는 말이 있다. 몽골한인회장 혼자 아무리 애써 봐야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한 수 아래로 무시해버리면 말짱 도루묵(=아무 소득 없는 헛일이나 헛수고)일 터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송 (吳松) 제11대 주몽골 대한민국 현직 대사(Ambassador Extraordinary and Plenipotentiary of the Republic of Korea to Mongolia Mr. Oh Song)가 보여 주는 보폭 넓은 쾌도난마(快刀亂麻) 식의 행보는 전임 대사들에 비해 단연코 빛을 발한다. 앞에 썼던 '사고 빈발 지역'이었던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과, 몽골 한인 동포 사회가, 그나마(그나마라고 썼다), 잠잠해지기 시작한 건, 2009년 3월 16일 정일 제9대 주몽골 대사가 부임하면서부터였고, 그 뒤를 이어, 2012년 3월 14일 이태로 제10대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가 부임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안정기에 접어든 바 있으며, 올해 4월 8일 수요일 오송(吳松) 제11대 신임 주몽골 대사(Ambassador Extraordinary and Plenipotentiary of the Republic of Korea to Mongolia Mr. Oh Song)가 몽골 현지로 부임한 뒤로 바야흐로 안정기가 제대로 뿌리를 내린 듯하다. 실제로, (지난 4월 1일 수요일 이임한) 이태로 당시 제10대 주몽골 대사는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에게 발송한 이임사를 통해, “제 후임으로 오시는 대사(=오송 당시 주캐나다 대한민국 대사관 공사)는 오랫동안 외교 전문가로서 활동하신, 경험이 풍부한 분입니다. 동포 여러분께서 저에게 보내 주셨던 관심과 격려를 후임 대사께 더 크게 베풀어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라는 바람을 밝힌 바 있다. 올해 4월 15일 수요일 정오,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한국관(韓國館) 레스토랑(대표 조윤경)에서 열린, 대사가 주재한 몽골 주재 한인 동포 언론인 초청 상견례 간담회 현장에서, 오송 대사를 처음으로 만난, 본 기자의 느낌은, “오송 대사가 ‘양주 타입’보다는 ‘걸쭉한 막걸리 타입’”이라는 것이었다. 인간미가 넘친다는 뜻이다.
오찬을 겸한 본 간담회 현장에서 나온 오송 대사는, “몽골의 대기 오염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대사 관저 창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라며, “흔히들, 초임(初任) 대사는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저는 현재 계획된 일들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 같습니다”라는 다소 겸손한 소감을 피력했다. 그 당시, 본 기자는, 한국 속담 “신관(新官) 사또는 빗자루 세 자루를 갖고 온다”, 영어 속담 “A new broom sweeps clean(신관=新官은 구악을 일소한다)”, 중국 속담 “신관상림삼파화 (新官上臨三把火=Xinguan Shanglin Sanbahuo= 신구안샹린산바후오=새로 부임한 관리는 횃불 3자루를 갖고 온다)” 등 3개국의 세 속담을, 즉각, 떠올렸다. 거의 비슷한 뜻이라고 보지만, 은근히 다르기도 하다. 한국 속담에 등장하는, 신관(新官) 사또가 빗자루 세 자루를 가지고 오는 목적은, “자신의 앉을 자리를 쓸기 위함이요, 일을 할 마당을 쓸기 위함이며, 물러 나갈 자리를 쓸기 위함”이라고 한다. 미국 속담 “A new broom sweeps clean(신관=新官은 구악을 일소한다)”의 의미는, 새로운 책임자가 고질적인 모든 문제들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누군가를 해고(解雇)하거나, 일 추진 방식을 새롭게 확 뜯어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책임자가 업무를 시작하며, 세 사람 정도를 해고하고, 문서 작성 시스템을 확 뜯어 고친다고 치자. 남은 신임 직원들은 “아이고, 새 빗자루가 청소를 시작했네” 라는 주변의 말을 듣게 된다. (A new person in charge will get rid of all of the old problems. This might mean firing someone or it might mean changing the way things are done. When the new boss started his job, he laid off three people and changed the filing system for reports. The remaining new employees all were heard to say, "Well, a new broom sweeps clean!") 중국 속담에 등장하는, 새로 부임한 중국 관리가 횃불 3자루를 갖고 오는 목적은 “누가 자신의 적인가 아군인가를 알아 보기 위함이요, 관리로 앉아 있는 동안 일을 추진하기 위해, 때로는, 누가 돈을 갖고 오는지도 알아 보기 위함이며, 유사시에 야간도주(夜間逃走)해야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미-중(韓 美 中)의 이 세 속담 공히, 기관이나 단체의 수장(首長)이 바뀔 때마다 인구에 회자되는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는 한국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한국 속담을 ‘경험 많은 사람이 더 낫다는 말’이거나 ‘나중 사람을 겪어 봄으로써 먼저 사람이 좋은 줄 알게 된다는 말’로 풀이한다. 이 한국 속담에 담겨 있는 속뜻의 범위는 꽤 넓다. 어떤 형식으로든 공관장이 기관의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니 그로 말미암은 구성원들의 피로도와 불만감이 일정 수준을 벗어나 있는 상황이 이 한국 속담의 기본 전제이겠다. 또 이는 구성원들이 새로 올 신관(新官) 사또가 구관(舊官)을 능가하기를 슬쩍 바라는 열망도 전제돼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의 기대는 ‘한 번 믿어 봐?’ 했지만 ‘믿은 내가 등신이지’로 끝난다. 구관(舊官)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스러움이 신관(新官)에 대한 바람과 기대를 도출해냈지만 궁극적인 마지막에는 ‘실망감’인 것이다. 그래서 이 실망스런 피날레에 대해 자책하듯이 내뱉는 발언이 바로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다. 이 한국 속담의 최종 지향점은 신관(新官)이겠다. 하지만, 이 한국 속담에는 신관(新官)에 대한 실망스러움으로 반사적 이익을 획득해 ‘명관(名官)’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구관(舊官)에 대한 조소(嘲笑)가 슬쩍 스며 있음도 결코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 속담에 대한 해설이 다소 길었거니와, 지난 4월 8일 수요일, 주몽골 대사로 부임한, 몽골 한인 동포 사회의 신관(新官) 사또, 오송 대사에 대한 향후 평가, 즉, "신관(新官)이 명관(名官)이냐?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냐?"에 대한 평가는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의 몫일 터이다.
당시, 오찬을 겸한 본 간담회 현장에서, 본 기자는, 오송 대사에게, ‘대(對)몽골 공공 외교 홍보 강화’를 정중하게 요청했으며, 오송(吳松) 대사는 직접 수첩을 꺼내 메모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8개월이 지난 현재, 대사 부임 8개월째인 오송 대사의 견인불발(堅忍不拔)과 선전(善戰)은 눈부시다. 주몽골 대사관 대사실 비서가 본 기자에게 정기적으로 송부해 오는 행사 관련 보도 자료와 추후 일정에 대한 참고 자료를 보면, 참으로 숨가쁜 느낌이 든다. 본 기자가 확인한 이번 주에 진행되는 오송 대사 참석 행사 일정만 해도, 한-몽골 기업 활동 지원 포럼 참석⟹대한민국 공공 외교 몽골 친선 사절로 위촉된 몽골 신세대 가수 노민진(Nominjin=Номинжин=娜铭金) 양 공연 참석⟹통일노래 부르기 대회 참석⟹몽골 UB 서울 클럽 초청 간담회 주재⟹한-몽골 에너지 자원 협력 포럼 참석 등등으로서, 본 기자의 숨이 콱 막힐 지경이었다. Ⅳ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지금까지 Fact에 근거해 글을 써내려 왔다. 하지만, 말만 화려하면 무엇하랴? 번지르르한 말의, 말에 의한, 말을 위한, 그야말로 오로지 말뿐인 말의 성찬(盛饌)은 전혀 쓸데없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간다. 현재의 지구촌은 지구촌 각국이 자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지구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공 외교 (또는 공공홍보) 강화를 앞다투어 추진 중인 상황이다. 외교 (또는 홍보)의 패러다임이 정무-경제 등 전통적인 하드 파워에서 문화-예술 같은 소프트 파워 중심의 공공 외교 (또는 공공홍보) 강화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본 기자는 지구촌에서의 대한민국 외교라는 의미를 ‘지구촌 각국의 사회 각 분야 (또는 그 국민)이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게 하고,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을 믿음으로 대하게 하여, 어느 외교 (또는 홍보) 사안임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또는 그 국민)의 처지 (또는 입장)를 좀 더 긍정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외교부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대체적으로 외교관은 4가지 의무를 진다. 첫째, 국가를 대표하고, 둘째, 대외 협상을 진행하고, 셋째, 외교 (또는 홍보) 정보를 수집하여 축적하여 본국에 통보하고, 넷째, 재외국민 보호와 국가 이익을 추구한다. 요컨대, 외교부에는 대한민국의 대(對)몽골 국가 업무를 담당하고 성공적인 외교 (또는 홍보) 업무를 밤낮으로 다짐하는 전문 직업 외교관이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좀 더 포괄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외교 (또는 홍보)의 의미는 직업 외교관의 업무 영역을 넘어선다. 우리의 삶의 영역이 다 외교 (또는 홍보) 현장이다. 따라서, 예컨대 일제강점기 같은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외교관은 물론 재외 국민들도 마땅히 치열한 외교전에 뛰어들어야 하리라 본다. 이것이 바로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위한 첩경이라고 본 기자는 확신한다. 빈발하는 북한의 대남 도발 위협과 지난 2013년 4월 초 몽골인 관광객 7명의 대한민국 입국 거부 사태와 인천 아시아 경기 대회 권투 경기 판정 시비 등으로 초래됐던 몽골 사회 내에서의 일부 반한 감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오송 대사가 보여 주었던 보폭 넓은 쾌도난마(快刀亂麻) 식의 행보는 전임 대사들에 비해 단연코 빛을 발한다. 본 기자의 발언을 오송 대사 개인에 대한 무턱대고 내뱉는 덕담(德談), 찬사(讚辭) 내지는 오비어천가(吳飛御天歌) 쯤으로 보면 그야말로 오산(誤算)일 터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본 공공 외교를 통한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은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그동안 대한민국 외교부(장관 윤병세)와 지구촌 대한민국 공관이 추진해 온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강화 방안'과 궤를 같이 한다.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강화라는 의미를 어느 한 나라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라는 측면으로 이해한다면, 국격(=국가의 품격), 그리고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과 직결되는 개념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아울러, 브랜드를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일반 소비자의 성향에 비추어 보면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강화를 통한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의 의미심장함은 극대화한다. 외국 소비자들은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나 대한민국 기업의 제품, 대한민국 서비스 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을 도출해 낼 것이 명약관화하며,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강화를 통한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큰 틀로 볼 때 필수불가결한 선행 조건은 첫째, 대한민국의 국제 사회 기여 확대, 둘째, 대한민국 문화 자산의 가치 확산, 셋째, 대한민국의 글로벌 소통 강화, 넷째, 대한민국의 범국민 역량 통합 등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현재 신속하게 추진해야 할 대한민국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 제고의 방법이라면,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상호 문화 이해를 지향하는 쌍방향 교류, ▲외국인 대상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외국인들과 우리 문화를 같이 즐길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 개발, ▲재외 국민을 통한 지구촌 각국 온라인 커뮤니티와의 소통, ▲지구촌 한인 동포 및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애플리케이션 활성화, ▲한민족 전통 문화를 기반으로 한 한민족 역사를 빛낸 인물, 위인에 대한 적극적 홍보, ▲한민족 특유의 장점 분석을 통한 신홍익인간(新弘益人間=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주제의 대한민국 비전 제시 등이 우선 순위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외교부가 밝힌 한국에 대한 이미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구촌 사람들이, 가열되는 교육열, 성형 수술, 언어 장벽 문제, 인종 차별 문제, 북한 문제 등을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요소로 지적하긴 했으나, 대한민국의 강점 내지는 장점으로, 엔터테인먼트⇒경제력⇒IT 기술력⇒친절⇒전통 문화 및 역사⇒음식⇒자연 경관 등으로 꼽았다고 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보기에는, 현세를 살아 가는 우리 한민족에게 조상들이 물려 준 찬란한 문화 유산 가운데 가장 세계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한글과 태권도라고 본다. 한글은 유네스코(UNESCO)가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한 우리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문(文)이요, 태권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공인한 우리 한민족의 백절불굴의 무(武)의 상징이다. 게다가 한민족의 찬란한 역사는 자그마치 반만년에 달해 태양처럼 빛난다. 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손가? 주지하다시피, 몽골 한인 동포 사회는 지난 2015년 3월 26일로 한-몽골 수교 25년째를 넘겼다. 요컨대, 기왕 지구촌을 한류 붐이 휩쓸고 있는 이 기회를 빌려, 이런 맥락에서,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두고, 한민족 구성원으로서의 역사적 사명감과 자긍심을 지닌 채, 글쓴이는,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 실현 방안을 심사숙고하고 또 심사숙고해 보았다. 즉, 본 기자는, 대한민국에 대한 유용하고 올바른 정보 수집 및 제공을 통해, 아예, 1. 해외 한국어 교원, 2. 태권도 사범, 3. 한인 동포 언론사 등을 활용한, 외교부의 진두지휘 아래 지구촌 각 대한민국 공관이 틀어 쥐고, 선발에서부터 지침 하달까지 주도하는,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의 신속한 시행을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바람직한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의 방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첫째, 해외 한국어 교원들은 문(文)의 상징이요, 둘째, 태권도 사범은 무(武)의 상징이며, 셋째, 한인 동포 언론사는 문무(文武) 통합 홍보에는 더할 나위 없이 천군만마의 오피니언 리더이다. 이들이 지구촌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사회적 위상이, 일반 계층보다, 상당히 높다(상류 사회의 일원이라는 의미임)는 것을 유념하라! 이 삼위일체가 지구촌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사회적 위상과, 외교부의 진두지휘 아래 지구촌 각 대한민국 공관 주도의 주도 면밀한 브랜드 강화 가이드라인이 상호 보완적 기능을 발휘한다면, 그 폭발력이나 추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당연히, 지휘 체계는 외교부로 일원화해야 한다. 이에,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요원들과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은 물론, 각종 한인 동포 단체들(몽골한인회, 몽골한인상공회의소, 민주평통 몽골분회, 몽골한인외식업협회, 몽골 주재 한-몽골 다문화 가정회, 몽골 한인 동포 각종 체육 동호회 등등)과 유기적으로 융합하며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몽골 한인 동포들로 구성된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을 묵묵히 개시해야 할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 제도의 시행을 위해서는, 수개월에 걸친 여러 차례의 준비 모임이 필수적이며, 향후 구체화 할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의 성격, 추진 방향 및 프로그램 도출 등에 대한 논의가 거듭돼야 할 것이다. 요컨대,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의 핵심은 ‘홍보를 통해 기존 한인 동포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기존 한인동포 단체들 간의 긴밀한 협력을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을 소박하게 시작함으로써, 한인 동포 모두의 관심 사안인 한-몽골 관계에서 종종 발생하는 불협화음 해결에 대한 근본 대책을 조용히 강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본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은, ‘몽골 한인 동포들이 몽골 현지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있는 만큼,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관 차원에서 적극적인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이 한-몽골 화합을 위해 한인 동포 사회가 더욱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본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의 주요 활동은 첫째, 몽골 및 지구촌 대상 언론 홍보 활동(언론 홍보 및 효과의 극대화 추진, 친한 언론 보도를 위한 행사 등 발굴 및 기획, 몽골 현지 언론의 반한(反韓) 보도에 대한 공동 대응), 둘째, 한인 동포 대상 홍보 활동 (한인 동포 및 관광객 대상 효과적인 홍보 활동 방안 발굴 및 추진), 셋째, 친(親)몽골 활동(캠페인이나 행사 등의 발굴 및 추진, 몽골인들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지속적인 캠페인 발굴, 몽골 현지 정서를 고려한 행사 활동 등 발굴) 등의 세 방향의 큰 틀로 추진돼야 한다. 아울러, 본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에는, 예컨대, 기존 한인 동포 단체들을 지원한다는 개념으로 아이디어 개발 및 활동 취합에 나서며, 둘째, 장기적 기획 행사나 캠페인에 필요한 예산은 매건 방안을 마련하며, 셋째, 기존 한인 동포 단체들에 최대한 협조하며 유사시엔 모금 활동을 병행해나간다’와 같은 확실한 운영 방침이 설정돼야 마땅할 것이다. 아울러, 홍보를 위한 페이스북(Facebook) 웹사이트 개설(몽골어로 개설⟹친한=親韓 감정 유도 내용 등을 게재 전파), 한인 동포 및 관광객용 소책자 제작(몽골에서의 유의사항 및 기본 정보 수록⟹지갑에 휴대가 편하게 제작), 몽골 시민들과 한인 동포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체육 대회 개최 등도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는, 기존 한인 동포 단체들과는 별개로, 새로 창설된 한인 동포 조직이 결코 아니기에,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의 활동은 ‘안개처럼, 그림자처럼’ 음지(陰地)에서 수행돼야 한다. Ⅴ마무리 날씨가 섭씨 영하 40도의 엄동설한의 정점으로 향해 가고 있는 몽골 현지에서 이 글을 써내려 가고 있는 본 기자의 현재 심정은 그저 무겁다. 하지만,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이라는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 강화의 찬란한 희망의 싹을 보는 일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부디, ‘공공 외교 협력 요원 제도’ 활동이 한-몽골 화합을 위해 한인 동포 사회가 더욱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시발점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본 기자는 대한민국 외교 역사의 흐름을 통하여 외교 역사와 마찬가지로 외교 관계가 발전하여 왔음을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라는 악몽의 긴 터널을, 그야말로 천우신조로 빠져 나온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외교 업무가, 최근 지구촌의 대세인 공공 외교라는 이름으로 한국적인 외교가 구현될 현실에 처한 사실은 대한민국 외교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본다. 그것은 실행에 있어서는 혹 미진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외교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지구촌 상황 한 가운데서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어 풀어 보려는 진지한 시도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몽골에는 일제 강점기 초기에 몽골에서 활약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태준 선생이 잠들어 있고, 우리는 선생을 모신 그 공원을 현재, 이태준 기념 공원이라 부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 이태준 선생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요컨대, 본 기자의 속내는 이거다! "몽골 테렐지 공원 관광에 나섰는데 와서 보니, 이태준 공원도 있더라!”가 아니라,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이태준 공원에 참배하러 나섰는데, 와서 보니, 몽골에 ‘테렐지공원’도 있더라!”가 돼야 하는 게 옳지 않은가? 이래서, 공공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와 6. 25사변을 거치면서, 뭉개질대로 뭉개진 한민족의 미래는 없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게 역사의 순리가 아닌가? 올해 2015년으로 세종대왕이 나신 지 618돌이자, 훈민정음 반포 569돌이 되는 지금, 그에 견주면 그야말로 별것 아닌 일제 강점 35년이 우리말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 치욕(치욕이라고 썼다. 치욕=恥辱=부끄럽고 욕됨=disgrace, dishonor, shame=辱め)의 사슬을 끊고 이제 바야흐로, 한국어가 로봇 태권 브이처럼 힘차게 세계를 훨훨 날고 있다.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은 몽골한인회장이나,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추진해 실현되는 사안이 아니다. 몽골 한인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임 의식이 결여되면,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의 실현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일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에도 진행 중인 몽골 화폐 투그리크(Tugrik) 환율 급등 사태에 기인한 몽골 한인 동포들의 경제적 타격에 대한 우려가 점점 증폭되고 있는 와중에도, 현재, 오로지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진흥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국중열 몽골한인회장과, 이런 몽골한인회의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오송 주몽골 대한민국 대사에게, 몽골 한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몽골 한인 사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관심이,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의 밑거름이 될 것이므로, 현재로서는,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을 위해서는, 몽골 한인 동포들의 관심과 영향력을 한 군데로 모으는 것이 선결 조건일 것이다.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의 실현은 몽골 주재 한인 동포들은 물론 각종 한인 동포 단체들(몽골한인회, 몽골한인상공회의소, 민주평통 몽골분회, 몽골한인외식업협회, 몽골 주재 한-몽골 다문화 가정회, 몽골 한인 동포 각종 체육 동호회 등등)이 똘똘 뭉쳐 같이 힘쓰고, 애써야 가능하다. 향후, 공공 외교를 통한 몽골 한인 사회 위상 강화와 무궁한 번영 강화 측면에서의 몽골 한인 동포 사회의 계속적인 발전이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Copyright ⓒBreak News G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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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1/30 [13:49] 최종편집: ⓒ 2018break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