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넷플릭스 영화로 개봉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영화와 철학을 전공했고 영화 ‘소공녀’로 데뷔하여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 등 25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함께 멕시코 3대 감독으로 불린다.
영화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본인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영화로 극장 시스템 대신 온라인 영상 플랫폼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작년 칸 영화제는 넷플릭스 플랫폼이 극장 시장 질서를 혼란스럽게 한다면서 ‘로마’를 수상후보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로마’는 제 75회 베니스 국제화제 황금사자상, 골든 글로브·미국 4대 비평가상(전미비평가협회상·뉴욕비평가협회상·LA비평가협회상·시카고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고, 올해에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외국어 영화상 등 아카데미 상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로마가 아니라 멕시코시티의 한 마을 이름이다. 쿠아론 감독이 1970년대 유년기를 보낸 곳으로 ‘리보 마마’라 불렀던 보모 리보리아 로드리게즈와의 추억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가정과 사회를 담고 있다.
쿠아론은 실제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택과 흡사한 세트장을 짓고 어릴 적 실제로 쓰던 가구들을 채워 촬영했다.
스태프, 배우들도 모두 멕시코인들이다. 쿠아론 감독이 각본, 제작, 편집 뿐만 아니라 촬영도 직접 맡았다.
남성의 부재 안에서 여성의 연대와 사랑을 담은 ‘로마’
‘로마’는 감독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여성의 사랑과 유대를 통한 강인함을 담고 있는 영화다. 소년시절의 쿠아론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의 중산층 가정의 엄마 소피아와 네 아이들, 할머니를 돌보며 가사 일을 하는 멕시코 원주민인 클레오의 시선이 영화의 중심이다.
영화 속의 남자들은 권위적이며 비겁하다. 소피아의 남편은 외도를 한 후 가정을 떠나고, 클레오의 임신사실을 안 남자는 도망가 버린다. 남겨진 두 사람은 인종, 계급간의 차이를 극복하여 수평적인 관계로 유대하며 서로를 보듬는다.
영화는 클레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어 담담하게 흐르지만 영화의 배경처럼 사용되는 장면들인 학생들의 시위, 군대행진, 사냥 등을 통해 197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일상의 소리와 영상의 테크닉으로 빛을 내는 ‘로마’
‘로마’는 흑백영화로 말이 많지 않으며 배경음악도 없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는 긴 여운을 남기며, 최고의 작품을 본 뿌듯함이 들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 ‘로마’의 흑백화면은 65㎜디지털로 촬영된 것으로 빛과 그림자와 명암 대비가 부드러우며 모든 장면이 아름답다. 장면들이 한 장, 한 장의 작품 사진이다. 또한 끊지 않고 긴 호흡으로 담아내는 롱테이크 장면은 클레오의 공간과 일상을 담아내며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시킨다.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없다. 배경음악이 없으면 자칫 지루해거나 건조할 수 있지만 ‘로마’에서는 일상의 소리가 배경음악의 역할을 하며 클레오 일상의 잔잔함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슥슥 빗질하는 소리, 물청소하는 소리, 행인이 지나가는 소리, 햇살이 출렁이는 소리, 개가 멍멍 짓는 소리, 쏴아쏴아 하는 파도소리 등이 이미지로 입혀져 영화의 배경음악이 되어 클레오가 겪어 나가는 갈등을 무심하고, 담대하게 담아내 심정적으로 더욱 공감하게 한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조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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