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을 소유한 65세 이상 고령층의 경우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에 비해 훨씬 많은 자산을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높은 주택가격으로 젊은층(18-39세 사이)의 내집 마련 비율은 갈수록 낮아져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사진은 시드니의 한 주택경매 현장.
주택 소유 호주 고령층, 임대주택 거주자 비해 20배 ‘부유’
18-39세 연령층 주택소유 비율은 갈수록 낮아져... ‘사회문제’ 우려
호주에서 부자가 되는 길은 일단 ‘내집 마련’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호주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ABS) 자료는 자기 주택을 소유한 고령층의 자산이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ABC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7:30’가 호주의 낮아지는 주택보유 비율과 그 원인들을 진단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17-18 회계연도, ABS 집계에 따르면, 본인 소유의 주택을 소유한 65세 이상 호주인의 평균 순자산은 96만 달러에 달한다. 매월 주택담보 대출을 상환하고 있는 유사한 가구(65세 이상 연령으로 최소 1명 이상 거주하는 가구)의 평균 순자산가치 또한 이와 비슷한 93만4,900달러였다.
대조적으로, 같은 연령이면서 주택을 임대해 거주하는 이들의 평균 순자산은 4만800달러에 불과했다.
ANZ 은행 경제학자인 펠리시티 에멧(Felicity Emmett) 연구원은 “주택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할 것”이라며 “부의 불평등, 특히 세대 간 자산보유 불균형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자문사인 ‘Deloitte Access Economics’의 니키 허틀리(Nicki Hutley) 연구원 또한 “주택을 소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별도의 ‘경제적 하위 계급’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허틀리 연구원은 “우리는 (주택 구입 등으로 일찌감치 자산을 확보한) ‘호주의 특정 계층이 다른 계층에 비해 쉽게 은퇴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라고 본다”며 “현재 호주는 보다 많은 이들을 부동산 시장에서 바깥으로 내모는 주택가격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7:30’ 프로그램의 요청으로 호주 중앙은행(Reserve Bank of Australia)이 제시한 자료는 지난 2011년에서 2016년 사이, 모든 연령대의 주택소유 비율이 낮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멜번대학교 로저 윌킨스(Roger Wilkins) 교수는 “주택가격이 강세를 보일 때 소유자 비율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컨설팅 사인 ‘코어로직’(CoreLogic)에 따르면 시드니 외 각 주 도시 거주자의 경우 주택마련을 위한 20%의 보증금(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한 최소 자금)을 저축하는 데에는 평균 9년이 소요된다. 하지만 주택가격이 높은 시드니 거주자는 중간가격을 기준으로 한 주택 구입을 위해 평균 가구 수입의 8배 이상이 소요된다.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이후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을 감안, 전문가들은 올해 5월경, 지난 2년여 침체기 동안 하락했던 주택가격이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허틀리 연구원은 “현재 (주택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현실이지만 그것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주택가격을 계속해서 올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호주의 저렴한 주택가격 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젊은층 주택소유 비율
갈수록 낮아질 것” 우려
호주 정책연구기관인 ‘그라탄연구소’(Grattan Institute)의 금융정책 연구 책임자인 브랜든 코츠(Brendan Coates)씨는 “젊은 층 사이에서 주택소유 비율이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라탄연구소에 따르면 시드니와 멜번의 경우 18세에서 39세 사이 연령층의 주택소유 비율은 2002년 이후 크게 떨어졌으며, 지난 2017년 이후의 침체기 동안에만 약간 증가했을 뿐이다.
호주 가정의 수입 및 노동력을 조사하는 ‘Household, Income and Labour Dynamics in Australia(HILDA) Survey’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멜번의 경우 18-39세 사이 계층의 주택소유 비율은 34%였다. 하지만 2018년 조사에서 이 비율은 22%로 떨어졌다.
코츠 연구원은 “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주택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면서 “이로 인해 향후 수십 년 동안 보다 더 적은 수, 특히 저소득 계층의 주택소유 비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며, 이는 호주국민들의 생활 전반에 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각 연령별 주택소유 비율
주택가격이 크게 높아진 지난 2011년에서 2016년 사이, 호주의 모든 연령층에서 주택소유 비율은 낮아졌다. Source : ABS
‘Housing deposit scheme’,
실제 효과에 의문
지난해 연방 정부는 첫 주택 구입자의 시장 진입을 지원하기 위한 계획 중 하나로 올해 1월 1일부터 ‘Housing deposit scheme’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은 주택담보 대출을 원하는 첫 주택 구입자들에게 주택가격의 20%가 아닌, 5%의 예비 자금만으로 모기지(mortgage)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나머지 15%는 ‘National Housing Finance and Investment Corporation’에서 특별 대출 제공).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계획이 주택가격 자체를 낮추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코츠 연구원은 첫 주택 구입자를 대상으로 한 이 제도는 “단순히 ‘말만 그럴 듯한 정책’(a policy that sounds good)의 한 사례일 뿐”이라면서 “첫 주택 구입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택을 판매하는 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 뿐이며, 첫 주택 구입자에게 인지세를 면제하고 일정 금액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정책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딜로이트’의 허틀리 연구원 또한 적정한 주택가격 유지에 실패한 정부 정책에서 나온 ‘응급조치’(band-aid measures)라고 표현하면서 “저렴한 주택가격을 유지하는 기본은 사람들이 거주하고자 하는 지역에 더 많은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객원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