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가 ‘꿈’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나에게 꿈이 있다”또는 TV 광고문구 중 한때 유행어가 된 “내 꿈 꿔”라는 말을 들으면 ‘꿈’이란 단어가 뭘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꿈은 희망적인 뜻에 사용할까, 다른 사람들은 좋은 꿈을 꾸는데 나만 왜 늘 나쁜 꿈을 꿀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로또에 당첨된다든지 부자가 된다든지 하는 길몽을 꾸었으면 하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다. 옛말에 ‘불이 나는 꿈을 꾸면 부자가 된다’라고 했는데 내 꿈에서 어쩌다 불이 나는 꿈을 꾸면 그 불은 언제나 불이 나려다 꺼진다. 꿈에서 돼지를 보았는데 그 돼지는 너무 조그만 새끼여서 돼지 꿈을 꾸었는지 아닌지 판단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어쨌든 로또를 샀는데 역시 개꿈이었구나, 라든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예를 가지고 있어 돼지 꿈에 대한 꿈을 버린지 오래되었다.
나의 꿈은 대부분이 악몽이란 단어와 가까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았는데 인사를 하려고 가까이 가면 그 사람은 언제 여우 꼬리 빠지듯 문을 빠져 나가 버린다든지, 물론 이건 괜찮은 편이지만 자고 나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꿈을 많이 꾸었다. 나는 잠자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떤 때는 자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었다. 또 어떤 꿈이 나를 괴롭힐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꿈에 변화가 왔다. 꿈을 꾸면서 악몽을 꿀 때 이것은 꿈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꿈속에서 나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때부터 악몽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졌고 ‘악몽을 꿔도 괜찮아’라고 생각 하며 잠을 잔다. 잠자는 것이 편해지면서 꿈이 뭘까 알아보고 싶은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 세계로 접근할 수 있는 왕도”라고 주장했다. 분석심리학의 선구자인 칼 융도 이에 동의하며 “꿈은 무의식 세계를 보여주는 의식의 이벤트”라고 말했다.
꿈은 낮 동안 일어났던 일 중 현저히 감정적으로 미처리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거로 밝혀졌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견지에서는 꿈이 무의식적 의도를 숨기기 위하여 형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꿈은 소원충족적으로 은밀하게 욕망을 실현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는 꿈은 욕망을 감추려고 하는 것보다, 무의식적 정신의 의도를 가능한 자아의식에 알리기 위하여 형상화를 시도하려고 꿈을 꾼다는 것이다. 악몽은 무의식이 자아의식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 즉 나약하게 살지 말고 부지런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라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고 한다.
꿈속에서 자기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을 루시드 드림(Lucid Dream, 의식이 있는 꿈)이라고 하며 꿈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도나 티베트에서는 천 년 전부터 꿈 요가를 하여 꿈을 꾸는 상태에서 완전히 깨어 있는 훈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루시드 드림 연구소를 설립한 스티븐 라버지 박사는 꿈꾸는 동안 뇌의 작동 상태가 변하면서 의식이 깨어나 루시드 드림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것을 이용하여 운동 경기 또는 자기가 목적하는 일의 능률 향상을 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조사를 통해 나의 꿈에 대한 의문이 풀렸고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자각몽에 대하여 왜 이런 변화가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 나름의 해석의 실마리는 ‘마음 챙김(Mindfulness)’즉 명상 훈련을 하며 얻게 된 마음의 평화가 아닐까 추측된다. 나의 의식이 평정을 찾음 으로써 나의 무의식이 편안해진 게 아닐까. 그래서 더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반응일까?
<새움터 회원: 엘리자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