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신성일씨의 부고를 듣고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독자) =' 한국 영화계 큰 별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라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인명은 재천인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인가 한국 TV방송에서 노익장들의 건강한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사람이 두 사람 있었는데, 고인이 그 중 한 사람이다.

고인의 장례식에서 그의 후배가 "신성일 선배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없었던 대단한 연기자"라고 하였다.

나는 고인과 직접 대면한 적이 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71년도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박은 연하장을 돌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그 연하장을 우편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신성일, 엄앵란 그리고 큰 딸로 부터 직접 받았다. 그들이 내 일터에 와서 연하장을 내 손에 쥐어 주며, "지난 한 해 감사했습니다" 라고 인사했다.

'65년도에 영화배우 김지미씨의 손목을 잡아 보았다'고 말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몇몇 사람들이 "그것 뻥이야"라고 했다. 아마도 내가 신성일씨 가족으로부터 직접 연하장을 받았다고 하면 이들은 틀림없이 또 "뻥이야!"라고 할지도 모른다.

일손을 놓은 뒤 많은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 중 신성일의 자서전은 너무 솔직한 면이 있었다.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아 외제차인 69년형 신형 포드 머스탱을 샀다는 내용이 나온다. 바로 그 머스탱의 보증수리와 정기점검을 나의 일터였던 현대 자동차 원효로 사업소 정비과에서 책임지고 해 주었다.

나는 당시 미 8군 모터풀에서 오래 일했다는 직원에게 신성일씨 차를 입고부터 출고까지 책임지게 하였다. 그리고 매뉴얼대로 점검하였다고 기록한 뒤 고객에게 주라고 지시 하였다. 그런데 직원의 영어가 좀 부족해 내가 점검내용을 간추려 번역하여 주었었다.

위에서 언급한 TV 방송에서 내가 인상깊게 본 노익장은 신성일과 자니윤이었다. 그때 신성일은 웃통을 벗고 근육질을 자랑하기도 하였고, 경북 영천에 있는 자기집 승마장에서 말타는 모습도 보였다.

자니윤은 스무살 연하의 부인과 살고 있는 화려한 맨션을 소개하며 지금도 남자 구실을 잘 한다고 했다. 나는 이 소리를 듣고 같이 TV 보던 할멈에게 민망하여 슬며시 내 방으로 피하였다.

얼마전 제23회 부산국제 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해 레드 카펫을 밟았다는 분이 세상을 떠나다니! 자니윤은 지금은 젊은 부인과 이혼하고 캘리포니아주 어느 시골의 무료 너싱홈에서 찾아오는 자식도 친구도 한사람 없이 쓸쓸히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6.25때 젊은 자식이 전사하여 유골을 받아든 노모가 "쓸모없는 내가 먼저 죽어야지 니가 왜 먼저 죽노" 하고 통곡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절실히 다가온다.

인간이 한 세상 짧은 생을 살다 가면서 단 한사람에게라도 쓸모 있는 인간으로 기억에 남기고 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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