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 위축을 이유로 각 주 경계(State border) 폐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모리슨(Scott Morrison. 사진) 총리는 일부 주 정부의 ‘COVID zero’ 지침 포기를 반기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기’까지의 과정에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는 입장이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캔버라대학교 정치학자, ‘방역’과 관련한 정치적 결정의 문제 거론
팬데믹이 가져온 ‘전체주의적 세계’(Orwellian)에서 ‘COVID zero’를 지향했던 빅토리아(Victoria) 주의 다니엘 앤드류스(Daniel Andrews) 주 총리가 백기를 들었다. 감염자 발생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엄격한 제한을 받았던 빅토리아 주 거주민들은 어느 정도 안도를 했고, 연방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 또한 Vic 주 정부의 방역 정책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이제 호주는 공식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그렉 헌트(Greg Hunt) 연방 보건부 장관은 이달 첫 주, “이번 전염병 사태는 이제 풍토병이 됐다”(the pandemic has become endemic)고 말했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빅토리아 주가 ‘바이러스 0’에 가까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앤드류스 주 총리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통제력을 사실상 상실한 NSW 주 베레지클리안(Gladys Berejiklian) 주 총리의 정책을 따르고 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NSW나 빅토리아 주 모두 감염자 발생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NSW 주에서 이에 실패하고 있음이 명백해지면서 베레지클리안 주 총리는 ‘보다 일찍, 보다 엄격한’ 봉쇄와 제한 규정을 내놓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앤드류스 주 총리 또한 감염자 확산을 억제하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NSW 주 베레지클리안 주 총리는 이달 첫 주,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선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COVID 감염 최소화’에 매달리는 다른 주 지도자들에게 ‘델타’ 변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퉁명스런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최소한 당분간은, 아닐 것이다.
호주 언론인이자 캔버라대학교 정치학과의 미셸 그라탄(Michelle Grattan) 교수는 최근 호주 비영리 학술 매거진 ‘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관련 칼럼에서 각 주 정부 지도자들의 방역 정책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정부 사이의 분열, 방역 규정의 완화에 대한 정치적 결정의 위험을 나름의 시작으로 진단했다.
연방-일부 주 정부 사이의
커져가는 괴리감
NSW 및 빅토리아 주에서 감염자가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서부호주(Western Australia) 및 퀸즐랜드(Queensland)의 노동당 주 정부는 나름대로 발병 사례를 차단하고자 강력한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방역 정책은 연방 모리슨 총리의 방향과는 다소 다른 것이어서 두 정부 사이의 각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대조적으로 모리슨 총리는 ‘COVID zero’를 추구하면서도 결국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는 남부호주(South Australia) 및 타스마니아(Tasmania)의 자유당 주 정부를 추켜세웠다.
호주는 다가오는 연방 총선을 앞두고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악화되는 정책적 차이, 정치적 지향의 혼선으로 그 어느 때보다 더 분열되고 있다.
광역시드니 감염자 파동에 대해 ‘보다 빨리, 보다 엄격한 제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직면한 NSW 주 베레지클리안(Gladys Berejiklian. 사진) 주 총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로 주 방역 정책의 방향을 밝혔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바이러스 감염 억제를 위해 주 경계(State border)를 엄격하게 폐쇄함으로써 다른 지역으로부터 불만을 샀던 서부호주(WA) 마크 맥고완(Mark McGowan) 주 총리는 WA를 어떻게 개방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언젠가 주 경계 폐쇄를 해제해야 한다. WA의 백신접종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뒤처지자 맥고완 주 총리는 자신의 고집(주 경계 폐쇄)을 꺾고 ‘때가 되면’ 날짜를 잡겠다고 말했다. 그는 WA의 취약계층이 완전히 보호되기를 원하고 있다. WA의 고립과 단절이 아직까지는 그의 정책을 돕고 있는 셈이다(WA 주 경계 폐쇄에 대한 지지하는 거주민 비율이 높다).
경제적 문제로 인해 주 경계를 해제해야 한다는 요구는 보다 강화될 것이지만 맥고완 주 총리는 일반적으로 방역 정책 측면에서는 연방 정부를 능가할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은 무엇?
지난해 WA가 주 경계를 폐쇄한 것에 대한 팔머 연합당(Clive Palmer's United Australia Party)의 도전(주 경계 해제에 실패)에서 서부호주 지역 여론이 주 정부 쪽에 기울어 있음을 확인한 모리스 총리는 이 과정에서 당혹스럽게 한 발 물러나야 했다.
이달 첫 주 WA 출신의 마이클리아 캐시(Michaelia Cash) 연방 법무장관은 백신접종 인구의 변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성공적일런지를 고민했다. 연방정부는 낮은 접종과 관련해 WA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은 아니다.
맥고완 주 총리는 즉각 반발했다. 그는 “서부호주 거주민들은 주 경계를 개방하고 연방정부의 따돌림에 굴복하며 우리 주의 인구를 감소시키고 일자리 상실에 광산업을 포함한 우리 경제의 일부가 타격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의도적이지 않게 시작된 열띤 정치적 논쟁에서 종종 간과되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방역에 대한 논쟁은 WA 주 개방, 퀸즐랜드 주 경계 폐쇄 해제로 흘러간다. 내부적으로 이들 주는 NSW나 빅토리아와 달리 사실상 ‘개방’ 상태이다.
맥고완 주 총리는 일반적으로 높은 감염 발생을 피하고자 주의하고 있다. 퀸즐랜드 주 아나스타샤 플러츠주크(Annastacia Palaszczuk) 주 총리는 어린이 감염이라는 감정에 호소하여 주 경계 폐쇄를 옹호한다.
플라츠주크 주 총리는 이달 첫 주, 주 의회 연설에서 “퀸즐랜드 주를 개방하여 바이러스가 전파되면 12세 미만 모든 어린이들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며 “어린이들은 아직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연방정부 및 일부 전문가들은 “어린이의 경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경우는 극소수였으며 다른 국가에서는 아직 접종을 받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서부호주(Western Australia) 주 마크 맥고완(Mark McGowan) 주 총리는 바이러스 방역 대책으로 주 경계 폐쇄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으며, 이 때문에 연방 정치인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암울한 현실은 전환 국면에서 올 것...
주 경계 폐쇄와 관련된 싸움에서, 호주를 다시금 전 세계에 개방하는 것과 관련된 국경 해제 결정은 연방정부에 달려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여러 길이 있다. 호주 자국민의 해외여행과 해외에 체류하던 이들의 귀국, 해외 관광객, 학생, 게다가 호주의 부족한 기술인력을 채우기 위한 근로자 및 이민자 유입이 있다. 방역 규정은 여전히 필요하다. 가령 입국자들로 하여금 자택에서 자가 격리를 하도록 하거나 예방접종 요구가 있을 수 있다.
면역 및 감염연구기관인 ‘도허티 연구소’(Doherty Institute)의 모델링에 의해 구축된 연방정부의 COVID-19 전략은 (바이러스 극복에 대한) ‘희망’이라는 단어와 멋진 크리스마스의 약속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암울한 현실은 전환 국면에서 올 것이라는 우려이다. NSW 주는 이달, 매일 3천 명에서 4천 명의 새로운 감염 사례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으며, 빅토리아의 바이러스 감염자 수치는 매일 1천 명 이상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예측이다. NSW 주 정부는 오는 10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병원 입원과 사망 수치가 최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나
보다 일반적으로, 호주의학협회(Australian Medical Association. AMA)는 이달 첫 주, 모리슨 총리에게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공립병원 시스템의 위기가 임박했음을 경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AMA의 오마르 코시드(Omar Khorshid) 회장은 이 서한에서 “현재 호주의 병원 시스템은 예방 접종률이 증가하더라도 방역을 위한 제한 완화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서 “이 준비를 위해서는 현재 상태의 병원 수용력 파악, 관련 환자 증가에 따른 ‘COVID-19와 함께 살아가기’의 영향을 모델링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AMA는 ‘병원 수용력과 인력에 대한 기존 제약을 감안할 때’ 성인 인구의 80% 이상 예방접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달 첫 주 금요일, 보건 시스템과 의료진에 대한 보고를 받은 연방 내각은 AMA의 서한과 관련해 ‘더 많은 병원 지원기금을 위한 정기적 호소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서부호주(WA) 주와 함께 COVID-19 방역 일환으로 주 경계 봉쇄에 적극적이었던 퀸즐랜드(Queensland) 주의 아나스타셔 플라츠주크(Annastacia Palaszczuk. 사진) 주 총리.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하지만 감염자 급증 속에서 NSW 주 병원이 COVID-19 환자로 인해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WA의 병원 시스템 또한 이미 불충분하다는 증거를 보면, 향후 수개월 내 제한 규정 완화와 함께 감염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경우 호주의 병원 시스템은 바이러스 방역에서 잠재적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라탄 교수는 이처럼 정치적 결정에 따른 여러 위험을 언급한 뒤 “연방정부는 호주인의 삶을 전염병 사태 이전으로 되돌리고자 집중하면서, 이 과정이 ‘안전하게’ 수행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제한을 완화할 때 불가피한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제한을 해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기에는 보건 시스템 상황을 넘어 일반 지역사회의 접종률이 70%, 80%에 도달했을 경우, 적절한 예방접종을 받지 못할 수 있는 소그룹(sub-group)의 문제를 포함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제한 완화로 일단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지는 경우 사람들의 관심이 결정적으로 건강 문제에서 멀어지리라는 것에 기대고 있다”는 그라탄 교수는 “하지만 이는 예측 불가능한 전환의 효과적인 관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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