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가 호주 고등교육기관에서의 성폭력 근절을 위해 ‘국가 행동강령’(national code of conduct)을 발표하고 모든 대학들이 이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호주 인권위원회가 대학 내 성폭력 실태 조사를 기반으로 내놓은 ‘Change the Course’ 보고서 표지. 사진 : 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

 

연방-주 및 테러토리 교육부 장관, ‘행동계획’ 수립... 광범위한 학생들 불만사항 처리

대학협의체 ‘Universities Australia, 모든 회원 동의한 ’성적 학대에 관한 헌장‘ 내놔

 

지난 2017년 호주 인권위원회(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는 호주 전역 39개 대학의 요청에 따라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및 성희롱 실태를 파악하고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독립 설문조사(‘The National Survey’)를 실시했다. 또한 이 조사에서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의 성 관련 사건을 다루는 대학 서비스 및 정책의 효과를 조사했다.

‘The National Survey’라는 이름의 이 조사는 호주 대학의 문제 규모와 성격을 알아보기 위한 첫 시도이자 성적 불법행위를 주제로 한 첫 사례였다. 이 작업은 그 이전 12년에 걸친 호주방위군 내 여성 처우에 대한 검토 및 전국 직장 성희롱 조사를 포함, 유사한 성격의 프로젝트를 주도한 호주 인권위원회의 폭넓은 경험을 기반으로 했다.

인권위는 이 조사를 통해 39개 대학, 3만 명 이상 학생들의 경험을 측정하고 성폭력 및 성희롱, 대학 내에서 피해 학생들이 경험한 환경, 신고 상황, 변화를 위한 학생들의 제안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Change the Course: National Report on Sexual Assault and Sexual Harassment at Australian Universities 2017’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조사 결과를 요약하고 이에 대한 조치 및 개혁을 위한 권장사항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대학에서 이 핵심 권고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학생들의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연방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호주 대학들에 대한 ‘국가 행동강령’(national code of conduct)을 발표, 이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각 주 및 테러토리, 연방정부 교육부 장관들이 교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차원의 행동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이 계획에는 독립적 학생 옴부즈맨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성폭력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신고, 불만 사항을 보다 광범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호주 고등교육협의체인 ‘Universities Australia’는 모든 회원이 동의한 ‘성적 학대에 관한 헌장’(charter on sexual harm)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대학 내 성적 피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보고하고, 문제에 대한 교육을 개선하며 이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보다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아주 부끄러운 일”이라고 전한 ABC 방송 뉴스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사진 : Instagram / abcnews_au

   

이번 국가 행동강령은 이전에 제시됐던 사항들을 밀접하게 반영했다. 호주 대학들은 이미 7년 전, 호주인권위원회의 관련 보고서(‘Change the Course: National Report on Sexual Assault and Sexual Harassment at Australian Universities 2017’) 및 권장사항에 대해 유사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인권위의 조사 이후 실시된 가장 최근인 2020년 전국 학생안전 조사는, 교내 성폭력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매년 1만4,300명의 학생이 대학 환경에서 성 관련 피해를 당하고 있다. 이는 매주 275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2020년 및 2021년 팬데믹 사태로 인한 봉쇄조치가 해제된 이후 캠퍼스로 돌아온 학생들의 수를 감안할 때 피해 건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새 실행 계획에는 학생들이 특히 위험에 처해 있는 것으로 밝혀진 학생숙소에 대해 정부의 감독을 강화하는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

 

변경사항 적용은...

 

새 규정에 따라 대학은 성폭력 근절의 진행 상항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아울러 원주민, LGBTQI(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Intersex), 장애인, 다문화 및 국제학생 등 성폭력 피해 위험이 높은 학생과 교직원의 요구사항을 고려해야 하며, 공개적 보고도 필요하다. 최근 NSW대학교 분석에 따르면 호주 대학 가운데 절반 미만만이 이 문제에 대한 통합 데이터를 게시하고 있다.

이 규정은 또한 연방 교육부 내에 새로이 구성되는 부서에 의해 시행, 관리되며 매년 고등교육에서의 성폭력 비율 감소에 대한 전국적 진전 사항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대학이 운영하는 학생숙소 또한 민간업체가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규정을 적용받는다. 연방정부는 특히 사립대학 학생숙소에 대해 주 및 테러토리 정부와 함께 새 규정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성폭력 근절 캠페인 단체 ‘End Rape on Campus’를 설립한 운동가 샤나 브레너(Sharna Bremna. 사진)씨는 정부의 행동강령에 대해 “획기적이고 변혁적”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사진 : ABC 방송 뉴스화면 캡쳐​ 

 

정부 규정과 함께 새 감시기관은 조사 및 분쟁해결 권한을 갖게 되며 학생들은 안전사항 및 기타 대학 내 문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학교 내 옴부즈맨은 대학 부총장, 사설 교육기관 최고경영자, 기타 대학 관리자에게 피해 학생이 학비를 환불받아야 하는지 또는 정책 변경이 필요한지 여부를 권고할 수 있으며, 연방 의회에 연간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는 해당 분야 규제기관인 ‘Tertiary Education Quality and Standards Agency’(TEQSA)와는 별도의 기구이다. 지난해 10월, ABC 방송은 ‘2017년 이후 대학들이 학내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39건의 불만을 접수했지만 정식 조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한 바 있다.

 

성폭력 근절 조치의 중요성,

“새삼 강조할 필요 없다”

 

대학 내 성폭력 근절 운동을 전개하는 ‘End Rape on Campus Australia’의 샤나 브레너(Sharna Bremner)씨와 같은 캠페이너들은 이번 실행계획에 대해 “획기적이고 변혁적”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브레너씨는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들이 해당 사건을 신고했을 때 대학으로부터 받은 지원의 질은 어떤 교직원을 만나는가에 따라 결정됐다”면서 “한 대학의 피해자는 학업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받는 반면, 다른 대학의 학생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안전조치조차 없어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호주 인권위원회의 학내 성폭력 실태 조사 및 권장사항이 나온 지 수년이 지났지만 문제 해결은 거의 진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성폭력 관련 캠페이너들은 ‘그들(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침을 듣지 않으려 한다’며 연방정부를 향해 대학에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물으라는 압력을 가해 왔다. 사진 : Instagram / abcnews_au

   

이어 “지난 수년 동안 대학과 기숙사는 이 문제(성폭력 피해 발생) 예방에 실패했다”는 그녀는 “수준 높은 예방 노력이 없었고 도움을 요청한 피해 학생들의 안전과 요구를 지원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브레너씨는 “더욱 안타까운 것은, 피해 사례를 신고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개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이번 정부 계획이 이런 문제를 바꾸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개혁...”

학생들, 기대감 표출

 

현재 학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STOP Campaign’을 준비하는 호주국립대학교(ANU) 학생 누리아 올리버(Nuria Oliver), 메건 롤링스(Megan Rollings)씨 또한 정부 계획에 대해 “안전에 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자치권이 고등교육 부문에서는 효과가 없었던 게 분명하며 정부 개입이 너무 오래 지체됐는데, 이번 실행 계획은 ‘STOP Campaign’이 높게 평가하는 대학 내에서의 학생 피해자의 생생한 경험을 우선시한다”면서 “성폭력 및 그 피해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운 고등교육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정부의 실행 계획은 이 목표를 위해 필요하고 환영할 만한 조치”라고 밝혔다.

 

지난 2020년 실시된 전국 학생안전 조사는, 교내 성폭력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매년 1만4,300명의 학생이 대학 환경에서 성 관련 피해를 당하고 있다. 이는 매주 275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진 : ABC 방송 뉴스화면 캡쳐

   

연방 교육부 제이슨 클레어(Jason Clare) 장관은 “이젠 바뀌었다”며 “이번 개혁으로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서 보호받고 또 존중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대학 학내 성폭력 관련 조사를 실시한 상원 조사위원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던 ‘Universities Australia’도 정부 조치를 환영했다. 이 기구의 루크 쉬히(Luke Sheehy) 최고경영자는 “우리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학생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이제 학내에서 발생하는 이 심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학생들의 경험은 강의실에서 끝나지 않는데, 호주에서 필요로 하는 대학졸업 인재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면서 그들의 완전한 성공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