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국립 고려극장은 21일(토) , 조선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양반전’을 연극(한진 작)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고려인 동포들이 객석을 채운 가운데 이날 선보인 ‘양반전’은 몰락한 양반역보다 양반들의 허세와 탐욕을 조롱하는 돌쇠(알리쉐르 분)가 관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였다. 돌쇠가 몰락한 양반 부부나 부자 평민부부의 대사를 기지와 해학으로 꼬집을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와 웃음이 터져나왔다.
연극 '양반전'(연출 : 이 올렉/김 옐레나)은 당시 몰락하는 양반들의 위선적인 생활 모습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연암 박지원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진 선생이 1973년에 시나리오로 만든 것이다. 이후 고려극장은 몇차례 ‘양반전’을 무대에 올렸다.
양반전은 임진왜란 후 크게 동요한 조선의 신분제를 스토리의 바탕에 두고 있다. 몰락한 양반들이 늘어났고 반대로 의병으로 참가해 양반이 된 상민들도 늘어났던 것이다.
그 중 관가에서 쌀을 빌려먹으며 간신히 살고있던 한 몰락양반이 있었다. 그리고 옆집에는 돈이 많은 부농 한명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했던 부농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상민 계급이었으므로 양반에게 굽신거리고 천대받는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가족을 다 불러다놓고 옆집양반이 가난하여 관가에서 진 쌀들을 아직 갚지 못하고 있으니 '이 참에 양반계급을 사서 내가 양반행세를 해야겠다'라고 말하고 몰락양반에게 가서 계급을 사고 관가에 가 확인을 받았다.
그 덕분에 몰락 양반은 상민이 되었고 부농은 양반이 되었다. 관가의 수령은 양반이 지켜야 할 규율을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다음과 같다.
그러나 양반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 이것을 어겨서는 안 되느니라. 양반은 절대로 천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옛사람의 아름다운 일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세워야 하느니라. 새벽 네 시가 되면 일어나 이부자리를 잘 정돈한 다음 등불을 밝히고 꿇어앉는데, 앉을 때는 정신을 맑게 가다듬어 눈으로 코끝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두 발꿈치는 가지런히 한데 모아 엉덩이를 괴어야 하며, 그 자세로 꼿꼿이 앉아 『동래박의』를 얼음 위에 박 밀 듯이 술술술 외워야 하느니라.
(후략)
너무 당연하거나 시시콜콜한 규율만 늘어 놓는다. 점점 규율을 듣다가 진절머리가 난 부자가 좀 더 그럴듯한 건 없냐 묻자 수령은 문서를 다시 써주었는데, 그 문서의 내용이 다음과 같다.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 끄덩을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이 문서를 듣고는 경악한 부자는 읽는 것을 중지시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냥 양반으로 안 살겠다며 도망친다.
양반전은 '도둑놈' 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횡을 일삼는 양반을 풍자적으로 고발하고 실사구시의 실학 사상이 문학 작품 속에 드러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