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부심은 어디에 있나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아버지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는 다섯 개의 선명한 칼자국이 있다. 학도병(學徒兵)으로 끌려가 훈련을 받던 중 동상에 걸리셨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 군의관은 곪은 것으로 알았다. 전쟁 말기 후방인 평양 제42부대에 마취제가 남아 있을 리가 없었던 일본군은 아버지의 생손을 메스로 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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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아버지께서는 ‘돌베개’에 이렇게 적어 놓으셨다.
<그의 눈앞에 바짝 들이댄 나의 엄지손가락에 의무관은 알코올만을 한 두어 번 문지르고 그대로 메스를 갖다 대었다. 싸악, 이렇게 분명히 나의 머릿속에는 내 살이 쪼개지는 소리가 나의 조국이 베어지는 소리로 들렸다.
그러나 웬일일까? 엄지손가락에서는 고름이 나오기는커녕 하얀 살 속을 스며 나타나는 새빨간 피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의무관을 처다 보며 내 일그러진 표정을 폈다.
똑바로 나의 시선이 그의 시선을 타고 그의 동자 안으로 해서 그의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 일본 의무관의 한쪽 눈썹 끝이 약간의 경련 속에 치켜졌다. 싯누런 고름이 삐죽 쏟아져 나왔어야 했을 것을, 의무관은 시선을 피하면서 약간의 신경질을 그의 안면근육에서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눈치였다. (중략)
엄지손가락을 뺑뺑 돌면서 다섯 번의 메스질이 나의 살가죽을 난자질했다. 머리로 모여 있는 나의 긴장과 신경이 겨우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내 손은 이미 내 손이 아니고 일본 군의관을 당황하게 한 한국 민족의 한 부분이다. (중략)
머큐로크롬을 병째로 뒤집어씌워 놓고 지혈을 시키기 위해 꽁꽁 동여매었을 뿐, 그러나 나는 일군 육군 중위와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얻었다는 자부심으로 그의 앞을 물러서려고 하였다.
“... 야, 내 외과의사 생활 10여 년에, 너 같은 지독한 놈은 처음 본다. 장하긴 장하다. 독종이구나.”
나의 아픔은 이 한마디로 보람을 찾은 듯이 잠시 내게서 잊혀졌다. 그러나 ‘너 같은 일본 놈에게 아프다는 소리는 차마 하기 싫어서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했다....> -돌베개 중에서-
아버지는 평생 오른 엄지손가락에 훈장 같은 다섯 군데 칼자국을 지니고 사셨고, 아버지의 이야기는 오늘, 태극기를 온 몸에 휘둘러감고 거리로 나선 자들과 갈갈히 찢겨가고 있는 어제의 동지들이 웅크리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한 어떠한 자부심으로 살고있는지 또한 살아가야 할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돌아보는 내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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