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화요일(5일) 캔버라(Caberra) 의회 내 기자회견에서 토니 애보트 수상이 줄리 비숍(Julie Bishop. 사진 왼쪽) 외교부 장관, 조지 브랜디스(George Brandis. 사진 오른쪽) 법무부 장관과 함께 인종차별법 개정안 추진 철회를 발표하고 있다.
집권당, 호주사회의 압도적 반대에 개정 작업 한계 부딪혀
‘편견을 가질 권리’ 불허... 소수민족 그룹 및 정계 인사들 ‘환영’
애보트(Tony Abbott) 정부가 지난 수개월 동안 추진해 오던 인종차별법 개정안을 철회했다.
연방 법무부 주관으로 개정을 추진해온 인정차별법의 핵심은 이 규정의 제18조 C항으로, 이는 개인의 발언 자유를 옹호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하지만 법무부가 내놓은 이 개정안 내용은 궁극적으로 언어를 통한 인종차별적 표현 자체를 ‘개인의 자유’로 설정, 실질적으로는 인종차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호주 정계는 물론 각 소수민족 커뮤니티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왔다.
이로써 호주에서 ‘편견을 가질 권리’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그 동안 이 개정안을 제안한 연방 법무부 조지 브랜디스(George Brandis) 장관은 호주사회는 물론 각 소수민족 지도자, 심지어 소속 정당인 자유당 내에서도 심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금주 화요일(5일) 브랜디스 장관은 내각 회의에서 인종차별법 개정안에 대한 호주 사회의 반대 여론을 인정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개정안 추진 철회 결정에는 애보트 수상의 입김이 작용했다. 애보트 수상과 브랜디스 장관은 이날 호주의 대테러 의지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인종차별법 개정 문제에 대한 입장을 뒤집으면서 “(인종차별법 개정안 추진 철회는) 다수가 요구한 지도력”이라고 밝혔다.
이날 애보트 수상은 “호주의 각 커뮤니티가 (정부 정책에 대한) 비난자가 아니라 친구가 되기를 원하며 또한 각 지역사회가 ‘호주 팀’으로서 함께 일해 나갈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애보트 수상은 “지도력은 국가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사항”이라며 “이것이 (인종차별법 개정안 추진을 철회한) 바로 그 이유”라고 덧붙였다.
자유당의 한 소식통은 현 집권당이 인종차별금지법 18조 C항의 개정을 추진한 과정에 대해 “애보트 수상이 앤드류 볼트(Andrew Bolt)에게 한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루퍼트 머독의 언론 그룹인 ‘뉴스 코프’(News Corp) 소속 칼럼니스트인 볼트는 애보트 수상의 화요일 기자회견 1시간 전에 이 소식을 보고받았고, 그는 기자 발표 전 이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애보트 수상은 다음날인 수요일(6일) A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이 법안 개정 철회에 대해 볼트에게 통보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자유-국민 연립은 볼트가 그의 칼럼에서 ‘백인 중심의 호주인’이라고 언급한 것이 인종차별 법에 해당되어 기소되자 지난해 9월 총선에 앞서 인종차별법 18조 C항의 개정을 약속한 바 있다.
인종차별법(Racial Discrimination Act)은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발언, 모욕 또는 굴욕감을 주는 발언, 특정 개인이나 (인종적) 집단을 위협하는 행위(‘offend, insult, humiliate or intimidate another person or a group of people’)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3월 상원의원이자 법무부를 맡게 된 브랜디스 장관은 이 법의 규정 완화를 추진해 왔으며, 대중의 의견 수렴을 위해 개정 내용을 공개하고 사람들이 누구나 편견을 가질 권리를 인정했다.
이 개정안 초안이 공개되자 각 소수민족 그룹, 야당은 물론 이민자 지지 기반을 가진 일부 자유당 소속 의원들이 거세게 반대했으며, 법조계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한인사회도 각 소수민족 커뮤니티와 연계, 적극적인 개정 반대 활동을 전개해 왔다.
작가인 모세 SC 씨는 NSW 주 정부에 보내는 서신에서 “호주의 법무장관이 발표한 (인정차별법 개정) 성명은 뭔가를 오인한 것으로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호주인 누구나 ‘편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결코 합리적 기준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시드니 북부 혼스비(Hornsby) 지역구 의원이자 자유당 지역사회부 대변인인 매트 킨(Matt Kean) 의원은 집권당의 이번 발표를 환영했다.
킨 의원은 “이는 상식의 승리”라고 단정한 뒤 “호주에서 인종차별이나 (인종적) 편견은 설 자리가 없다는, 가능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킨 의원은 이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란이 거세게 일 당시 한인사회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인종차별 개정안 추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뒤 “자유당이 추구하는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인종이나 종교, 성별, 성적 취향과 관련해 차별받지 않으며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며 “조지 브랜디스 장관은 인종차별법 18조 C항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유가 선사하는 목적,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현 시대에 가져올 수 있는 놀라운 업적의 보호막으로서 존속돼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본지 1100호 보도).
버우드(Burwood) 등 지역을 포함하는 레이드(Reid) 지역구의 크레이그 론드리(Craig Laundy) 연방 의원 또한 인종차별법 개정안을 반대했던 인사 중 하나로, 집권당의 개정안 추진 철회를 반겼다.
반면 사회문제연구소(Institute of Public Affairs. IPA)는 인종차별법 개정안 약속을 깬 애보트 수상을 비난하는 반응을 보였다.
IPA의 존 로스캄(John Roskam) 대표는 “인종차별법 18조 C항을 폐지해 호주의 언론 자유를 회복하는 데 실패한 연립 집권 정당에 대해 완전 실망했다”고 말했다.
야당(노동당) 내각 법무부의 마크 드레이퍼스(Mark Dreyfus) 의원은 “애보트 수상이 인종차별법 개정안 추진으로 인기가 하락하자 이를 커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 내 대테러 방지를 위한 자금 확보’ 내용(애보트 정부는 금주 화요일인 5일 호주 첩보 및 대테러 기관에 6억3천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을 언급했다”고 꼬집었다.
한편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을 발행하는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는 지난 주 브랜디스 장관이 공개한 개정안 초안이 대중의 압도적인 반대에 부딪혔다고 보도한 바 있다.
페어팩스에 따르면 연방 정부에 제출된 4100여 건의 의견서 중 76%가 정부의 개정안 제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이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