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호주 사회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던 ‘Oz’ 잡지를 창간했던(공동) 리차드 네빌(Richard Neville)이 금주 월요일(5일) 사망했다. 사진은 1971년 영국판 공동 편집인이었던 제임스 앤더슨(James Anderson. 맨 왼쪽), 펠릭스 데니스(Felix Dennis. 맨 오른쪽)와 함께 선 네빌(가운데).
낙태법-백호주의 등 특화된 주제로 호주 검열법에 도전
1960년대 호주사회에 상당한 충격과 논란을 불러온 반체제 풍자잡지 ‘Oz Magazine’ 공동 창간인 중 하나였던 작가이자 사회평론가 리차드 네빌(Richard Neville)이 향년 74세로 타계했다고 금주 월요일(5일) ABC 방송이 전했다.
네빌은 화가인 마틴 샤프(Martin Sharp), 편집자 리차드 월시(Richard Walsh)와 함께 호주(1963년)와 영국(1967년)에서 사회 풍자를 노골적으로 담아낸 ‘Oz’를 창간해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당시 여러 사회제도에 대한 반대를 특화해 다루었던 이 잡지는 호주의 검열법(censorship laws)에 대한 정식 도전이기도 했다.
1963년 호주에서 발행된 첫 호는 시중에 배포된 날 점심시간, 시드니 길거리에서 무려 6천부가 팔려나갈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창간호에서 네빌을 비롯한 3명의 발행인은 호주의 낙태법과 백호주의 정책(White Australia policy)에 대한 반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외설적인 표현, 음란성 사진이나 그림 등을 그대로 게재했던 이들은 호주에서 두 차례나 ‘외설 출판물’로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권력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네빌 등은 런던에서 새로운 버전의 ‘Oz’를 창간했으며, 이 잡지로 영국에서도 ‘외설물 출판’ 혐의로 구속, 징역형에 처해진 그 유명한 ‘Oz의 외설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13년, 네빌은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잡지의 내용이 문제적 프로젝트의 일부가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자극적인 기분”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Oz 잡지의 ‘Big Ideas program’에 대해 “우리 부모 세대와는 전적으로 다른 삶을 시작하게 하는 많은 내용을 다루었다”면서 “섹스와 자동차 극장(drive-in movie), 로큰롤, 마약성 알약, 전 세계의 멋진 음악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네빌은 이어 “어떻게든 뭔가를 배우고자 대학에 들어갈 마음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뭔가가 있었다”며 “그것은 패러다임의 변화 또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고 말했었다.
아울러 그는 “60년대에 새로이 대체되는, 그 어떤 흥미로운 것들을 남기고자 했다”는 말로 ‘Oz’ 잡지 발행의도를 설명한 바 있다.
■ ‘Oz Magazine’은...
‘Oz’는 창간 당시부터 낙태, 동성애, 백호주의 이민 정책 등 당시 사회에서 민감했던 이슈에 반론을 제기함은 물론 인체에 대한 노골적 장면의 사진이나 그림을 그대로 게재,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진은 33호로 발생된 ‘Oz Magazine’.
1963년 시드니에서 첫 발행된 언더그라운드 대안 잡지로, 1967년 영국 런던에서 새 버전으로 발행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호주판 오리지널은 63년부터 69년까지 ‘풍자성 잡지’로 발행되었으며, 영국판은 ‘환각적 히피문화’를 표방, 67년부터 73년까지 선보였다.
언더그라운드 매체로서의 강력한 성격은 두 차례에 걸친 ‘외설 재판’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1964년 호주에서, 다른 한 건은 71년 영국에서 치러졌으며, 두 재판 모두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호주와 영국판 잡지 모두 핵심 편집자는 리차드 네빌(Richard Neville)이었으며, 시드니판은 리차드 월시(Richard Walsh)와 마틴 샤프(Martin Sharp)가 공동 편집자로, 영국판은 제임스 앤더슨(James Anderson)이, 후에 펠릭스 데니스(Dennis)가 공동 편집자로 합류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