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김원일박사 한국언론 유일 참석
뉴스로=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한국의 삭막한 대통령 회견과 많은 비교가 됐습니다.”
23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원일 칼럼니스트는 “놀라움과 감동의 연속이었다”는 말로 소감을 압축(壓縮)했다.
모스크바국립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모스크바프레스’를 발행하는 그는 푸틴의 연례 기자회견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등록기자가 아니면 참석이 아예 불가능하고 대통령에 대한 질문도 사전에 선정된 소수의 기자들이 미리 제출하여 각본대로 진행하는 청와대의 풍경과 너무도 대비된 까닭이다.
23일 모스크바 국제무역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엔 약 15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했다. 수도 모스크바의 내외신기자들은 물론 러시아 각지에서 온 기자들,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배경을 가진 기자들, 소수계 기자들까지 망라(網羅)됐다.
푸틴의 연례 회견에 참석하고자 하는 기자들은 대통령궁(크레믈린) 사이트에 대통령 기자회견 공지가 뜨면 신청을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기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니 대통령궁에서 검토해 이메일로 허가를 한다.
김원일 발행인은 “한국이라면 제도권 언론 위주로 선별하겠지만 현장에서 만난 기자들은 정말 다양했고 언론사 규모나 전통으로 차별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려 4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견과 전혀 짜맞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기자들의 자유로운 질의에 세심하게 답변하는 푸틴의 성실한 자세였다.
김원일 발행인은 “푸틴 대통령은 정오에 기자회견을 시작해서 4시 가까이 약 4시간동안 말 그대로 ‘열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국제문제에서 러시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거침없이 발언들을 이어나가는데 어떻게 저렇게 모든 사안에 대해 정통할까하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전역에서 올라온 기자들이 해당 지역의 민원성 질문들도 많이 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하나하나 관심을 보이면서 위로하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전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은 연례 기자회견을 위해 측근들과 몇날 며칠동안 예상 질문을 만들어 연습한다고 한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4시간동안 쉬지 않고 기자회견을 지속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다”고 덧붙였다.
김원일 발행인은 “푸틴과 박근혜대통령이 52년생으로 동갑인데, 러시아의 자유롭고 활기찬 대통령 기자회견과 한국의 삭막했던(?) 대통령 기자회견이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푸틴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원래 22일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난 19일 터키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안드레이 카를로프 러시아대사의 영결식이 22일 오전에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하루 연기돼 23일 열리게 됐다는 후문이다. 다음은 김원일 발행인과의 일문일답.
기자회견장 앞에서 안면있는 마샤 기자와 함께
- 대통령 회견에 참석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
“연말이 되면 크레믈린 사이트에 대통령 기자회견 공지가 뜨면서 온라인을 통한 신청을 받는다. 신청자들 중에서 검토해서 이메일로 참석허가를 알려주면 지정된 장소로 가서 미리 행사 참가증(기자증)을 받는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기자들을 위해서 행사 당일 별도 부스를 운영해서 즉석에서 참가증을 발급해 주기도 한다. 올해는 150여명의 기자들이 참여했다.”
- 질의자는 어떻게 선택되나?
“현장에서 손을 들면 크레믈린 대변인이 기자를 지명한다. 재미있는건 많은 기자들이 시선을 끄는 피켓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켓은 대부분 자신이 어느 지역의 어느 언론사 소속임을 밝히는 것이다. 개중에는 질문요지를 소속과 함께 크게 적은 것도 있고 푸틴을 수퍼맨으로 합성한 사진이나 푸틴과 트럼프, 프랑스 극우정치인 마리 르펜 캐리커처 사진을 들고 온 기자도 있었다. 시선을 끌어 질문자로 선택받으려는 기자들의 퍼포먼스라고 할까.(웃음)”
- 피켓을 들고 있는 기자들이 마치 푸틴의 팬클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냥 조용히 들고만 있는지, 시선 끌려는 다른 행동도 하나?
“기자의 질문과 푸틴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면 다음에 질문자를 고르는데 그때 일어나서 피켓을 흔들고 손을 흔드는 등 온갖 제스추어로 눈길을 끌려고 한다. 큰소리로 대통령을 부르는 등 소리를 치기도 하고, 몇몇 사람은 푸틴의 답변 중에도 피켓을 흔들어대지만 대부분은 답변을 경청한다.”
- 사전에 질문자가 정해진다는 느낌은 없었나?
“제가 살펴본 바로는 질문내용은 사전신청이 된 것이 아니다. 물론 몇몇 중요한 신문 소속 기자들은 미리 질문자로 지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행방식 자체가 사전에 질문지를 받고 할 수 있는 형식이 아니다. 장시간 진행되는 기자회견을 통해 온갖 얘기가 나온다. 가급적 지역별로 그리고 종합지 뿐만이 아니라 전문지(스포츠등)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었다.”
- 질문한 기자들은 얼마나 되나?
“대략 30명이 넘었다. 어떤 기자는 지명을 받자 ‘푸틴대통령께 질문을 드릴 기회가 갖기 위해 3년이나 연속해서 참석하며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이제야 기회가 주어졌다’며 감격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여성기자는 질문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큰소리로 "정말 중요한 문제를 질문드리고 싶다. 허락해달라"라고 외쳐서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분은 지방에서 왔는데 그 지역의 고아원 실태가 매우 열악(劣惡)하다는 사실을 알리며 푸틴의 관심과 도움을 요청해서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의혹에 관한 푸틴의 답변이 인상적인데.
“서방기자 한명이 러시아가 미국의 대선에 해커등을 동원해 개입했다는 의혹(疑惑)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하자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는 미국의 정치 경제 등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선 개입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면서 ‘못난이들만이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곤 한다’고 멋지게(?) 응수했다. 중국 CCTV 기자가 러시아와 중국관계에 대해 질의하자 ‘러중관계는 역사상 최고의 수준이다. 전략적 동반적 관계이며 국제 문제 해결에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에너지 협력과 인프라건설 등의 협력사업이 더 적극적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그외 질문들은 많은 부분들이 러시아 국내문제들에 할당되었다.”
- 일본 기자들도 있었을텐데
“일본 기자들이 몇 명 보였지만 질문기회를 주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답변에서도 일본에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지난 9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팀과 아베가 아주 긴밀한 모습을 보인 것을 고려하면 조금은 의외였다. 한국인으로는 저 혼자 참가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얘기 듣기로는 북한 노동신문 특파원도 해마다 참석한다고 해서 주의깊게 살펴보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사진까지 확보해서 얼굴을 익혀두었지만, 어쩌면 제가 발견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 요즘 러시아 올림픽팀의 도핑 관련 보도가 눈길을 끈다
“도핑 관련 질문에 푸틴대통령은 처음 도핑을 폭로(?)한 사람의 신분이 불명확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서방의 도핑조사 결과를 믿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이 폭로자가 캐나다에 살다가 러시아에 와서 활동하다 나중에는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했는데 신분이 불명확한 사람이 제기한 러시아의 도핑의혹은 신빙성이 없다면서 러시아도 자체적으로 선수들의 도핑검사를 했지만 한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서방의 조사에 대해의구심을 갖고 신빙성을 의심하면서 러시아선수들의 도핑의혹을 강하게 부정하는 모습이었다.”
- 쉬는 시간도 전혀 없이 4시간을 계속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데
“저도 깜짝 놀랐다 약 2시간이 경과하자 푸틴 대통령의 목이 쉬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앉아 있는 저도 힘들었는데 혼자서 답변하는 대통령이 오죽하겠나. 이제 끝날 때가 되었나 보다 했는데 비서가 물 한잔을 갖다주니까 마시고 회견이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 회견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3시간 50분 정도 경과했다. 지금까지 가장 긴 기록은 2008년 회견으로 4시간 40분간 진행됐다고 한다.”
- 종합적인 소감을 말한다면
“푸틴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국가 영역 전 분야 대한 푸틴 대통령의 ‘무불통지(無不通知)’와 강하면서도 자상한 아버지와도 같은 국가지도자의 모습을 다시 확인할 수있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의 모습도 각국의 정치 사회적인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각 지역에서 올라온 기자들은 국가정책현안은 물론, 각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지원에 대한 민원성 질문들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대통령이 하나하나 관심을 보이면서 위로하고 해결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에서 마치 조선시대 정조가 궁궐을 나가는 행차를 할 때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일반 백성들이 징과 괭과리를 쳐서 임금의 주목을 끌고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다는 이른바 ‘격쟁(擊錚)’이 떠올랐다.”
* '글로벌웹진' 뉴스로 www.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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