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적 아파르트헤이트’ vs. ‘교육백년대계의 해답’
셀렉티브 스쿨 입학 선발 고사에서 아시아 출신 이민자 자녀들이 거듭 월등한 성적을 거두면서 셀렉티브 스쿨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연 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사교육 시장의 진앙지로 지목돼온 셀렉티브 스쿨 입학 시험 합격자들의 사교육 의존도는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다.
지난 2010 셀렉티브 스쿨 입학 시험 합격자의 53%가 비영어권 출신 이민자 자녀이며 이들 대다수가 사설학원을 다녔다는 공식 통계가 처음 발표되면서 국내 언론들은 ‘사교육 팽창’ 문제를 집중 거론해 왔다.
실제로 최근 자료에 따르면 셀렉티브 스쿨 입학자의 최저 75%에서 최대 95%가 사설학원을 다녔거나 개인 과외를 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일부 일선 교육자들은 “그 수치는 거의 100%에 육박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제임스 루스 등 명문 셀렉티브 스쿨 입학생들 가운데 아시아권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셀렉티브 스쿨의 획일성, 동질성 문제가 강력히 부각돼 왔다.
마이스쿨자료에 따르면 최고의 명문 제임스 루스의 경우 재학생의 97%가 비영어권 출신인 것으로 분석됐고, 노스 시드니 걸즈(93%), 노스 시드니 보이즈(92%), 세인트 조지 걸즈(92%) 시드니 보이즈(89%), 포트 스트리트 하이(79%) 등 대다수의 셀렉티브 스쿨의 비영어권 출신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물론 이들 비영어권 출신 학생들의 절대다수는 아시아계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와 동시에 시드니 서부 지역 등 서민층 동네에 소재한 일반 공립학교 재학생 가운데 비영어권 출신 학생의 비율 역시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셀렉티브 스쿨의 양극화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아왔다.
이처럼 ‘명문 대학 진학의 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셀렉티브 스쿨’의 “합격생 대부분이 아시아계 학생이고 상당수가 사설학원을 다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된 것.
이런 맥락에서 셀렉티브 스쿨 제도의 반대자들은 현행 제도를 ‘교육적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공의 과거 인종차별주의정책)로 낙인 찍어왔다.
반면, 셀렉티브 스쿨제도의 찬성주의자들은 ‘교육 백년대계의 해답’으로 받아들이는등 찬반공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셀렉티브 스쿨 제도에 대한 교육계의 시각이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의 양극화 현상’ 초래
자타가 공인하는 셀렉티브 스쿨 제도의 반대론자는 NSW주 중고교 교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원로 교육자 크리스 보너(전 애스퀴스 보이즈 교장) 씨다.
그는 “명문 사립학교들과 셀렉티브 스쿨이 일반 공립학교를 볼모로 번성하고 있고, 셀렉티브 스쿨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라며 이 제도의 모순을 부각시켰다.
<아둔한 국가: 호주는 어떻게 공교육을 붕괴시키고 있나, The Stupid Country: How Australia is Dismantling Public Education >란 책의 공동 저자인 보너 씨는 “20년 전 혼스비 지역에 셀렉티브 스쿨 2개교가 설립됐을 당시 교육당국은 주변 학교들 모두에 걸쳐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학교에만 우수 학생이 몰리고 주변의 일반공립학교와 사립 학교 모두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r상기시켰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 보너 씨는 “셀렉티브 스쿨 제도는 소득수준과 학업성적에 의해 학생들을 분리시키는 계층별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면서 "성적이 우수한 엘리트 학생들을 위해 학교들이 차별, 분리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저소득층 자녀들일수록 공립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고 부유층 자녀들은 사립학교와 셀렉티브 스쿨을 선호하면서 사회 계층 간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크리스 보너 전 교장의 이같은 우려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결국 공부를 잘하고, 빈곤층 자녀일 수록 성적이 떨어진다’는 사회적 통념을 더욱 고착화시킨다면서 “셀렉티브 스쿨 제도가 장기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결론적으로 그는 “일반 학교 학생들이 셀렉티브 스쿨 학생들에게 뒤지는 것을 국가적으로 방관하게 되면 종국적으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될 것”이라고 강도높게 경고했다.
멜버른 대학교의 학교제도 전문학자인 리차드 티스 교수도”NSW주의 셀렉티브 스쿨 제도의 확대 실시가 ‘공부벌레’ 양산에는 성공했지만 사회적 대가가 너무 크다”고 경고했다.
티스 교수는 "무엇보다 최고의 인재들을 소수의 학교에 집중시키는 불평등 정책”이라고 질타하며, “동급생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우수 모범학생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일반 공립학교를 고사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왜 셀렉티브일까?”
그렇다면 셀렉티브 스쿨 제도는 과연 불가피한 것일까, 아니면 교육의 평준화를 위해 철폐돼야 할 불필요한 제도일까?
정답은 일단 “셀렉티브 스쿨 제도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평가되나 여러가지 문제점이 많고 보완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부가 이번에 발표한 셀렉티브 스쿨 입학 전형 개편 계획에 대해 학부모나 일선 학교가 모두 반기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자녀들을 셀렉티브 스쿨에 입학시키겠다는 부모들의 열망은 쉽게 잠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 시각이다.
서민층에서 부유층 부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부모들의 교육수준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셀렉티브 스쿨 입학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민자 가정이라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바로, 셀렉티브 스쿨은 공부벌레 학생들이 나래를 펼 수 있는 곳이자 명문대학 진학의 보증수표로 믿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셀렉티브 스쿨 시험에서 탈락한 학생들의 70%가 사립학교로 진학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셀렉티브 스쿨이 명문사립학교와 일반 공립학교의 격차를 줄이는 가교역할을 해왔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얼마전 발표된 한 관련 조사에 따르면 공립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실업률은 사립중고등학교 졸업생들 보다 5배 높은 것으로 파악됐으며, 카톨릭 중고등학교 졸업생 보다는 2배 높게 나타났다.
대학 진학률 역시 사립학교 출신이 공립학교 출신보다 2배 높게 나타난 반면 TAFE 등록률은 공립학교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즉, 일반 공립학교의 위기 시대임이 거듭 확인 된 것.
결론적으로, 호주 공립학교 교육의 부실과 사립학교의 우수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셀렉티브 스쿨 제도의 당위성은 부각되나, 입학전형 절차는 보완돼야 한다는 것이 전반적인 여론으로 풀이된다.
사설학원의 난립과 획일적 교육…셀렉티브 스쿨의 팽창
언급된대로 호주사회에서 셀렉티브 스쿨 제도의 폐단을 지적하는 비난은 사교육 조장에서 비롯된다.
실렉티브 스쿨 입학 열기로 인한 사설학원의 난립과 그로 인한 획일적 교육 그리고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입시지옥의 난관을 거치게 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경우 이러한 입시 대비용 획일적 학원교육은 명문 셀렉티브 출신 학생들이 대학 진학 후 오히려 맥을 못추는 모순적 현상을 야기시켰고 일부 셀렉티브 스쿨의 경우 영어 성적만은 일반 공립학교 평균치에 겨우 턱걸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가 야기되자 NSW주 교육부는 셀렉티브 시험에 영어의 비중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일단 잠잠해졌지만 사설학원의 난립과 획일적 교육, 그리고 사회적 차별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도 일부 교육자들은 “셀렉티브 스쿨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 제도의 시행기관인 NSW 주 교육부의 문어발식 셀렉티브 스쿨의 증가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한국의 외국어고와 자사고의 지나친 증가로 야기된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셀렉티브 스쿨 제도에 대한 심층 조사연구를 이끌었던 호주의 대표적 사회과학자 토니 빈슨(Tony Vinson) 교수(시드니 대 교육학 교수, NSW 대 석좌교수)도 “모든 문제는 셀렉티브 스쿨의 지나친 양적 팽창 때문”이라며 일반 공립학교(comprehensive school)의 질적향상을 통해 교육의 평준화와 사회적 결집력을 모색할 수 있다”고 단정지은 바 있다.
정답은 일반 공립학교의 질적향상
교육은 개개인과 국가의 미래이며 백년대계이다.
더군다나 호주 전체 어린이 가운데 90% 가량이 동네의 일반 공립학교(local comprehensive school)에서 미래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소수의 영재교육도 중요하지만 학생 전체의 성적증진은 국가 전체의 미래를 밝게하는 것이라는 점을 교육당국은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일선교사들의 바람이라는 점에 호주 교육계는 방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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