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도심의 한 사무실 청소를 맡은 외주 용역회사 청소원이 업무를 시작하기 전, 회사 내에 있는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해고된 데 대해 공정근로위원회는 “부당하며 해고 사유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근로위원회, 드 보통 산문집 문구 인용해 판결 배경 설명
직장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근로자의 이의 제기에 대해 호주 공정근로위원회(Fair Work Commission)가 ‘부당 해고’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금주 수요일(1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보도했다.
이번 일은 제소한 근로자의 해고 사유도 그렇지만 이를 심의한 공정근로위원회의 아담 해처(Adam Hatcher) 위원장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산문 문구를 인용하며 부당해고임을 설명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처 위원장은 제소 근로자의 해고 사유가 ‘부당하다’는 이유로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코올 때문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과 착륙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Office civilisation could not be feasible without the hard take-offs and landings effected by coffee and alcohol)라는 설명을 인용했다.
이는 한국어로도 출간된 드 보통의 산문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는 문구이다.
파트타임 사무실 청소원으로 일하는 A씨는 어느 날 저녁업무를 시작하기 전, 시드니 시내 사무실 안에서 자신이 청소를 맡은 회사의 커피를 만들어 휴식을 가졌다.
하지만 A씨의 즐거운 커피 타임은 불과 이틀 후, 그야말로 ‘깔끔하게 종료’(summary dismissal)됐다. 클라이언트의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A씨의 고용주인 ‘Glad Group Pty Ltd’ 사는 A씨가 커피를 마신 것에 대해 ‘커피를 훔쳐 마신 것’으로 간주했고, ‘심각한 부정행위로 인한 해고라는 법 규정’과 ‘회사(Glad Group Pty Ltd)의 명성과 수익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내렸다.
하지만 이 문제를 심의한 공정근로위원회 해처 위원장은 “A씨에 대한 회사 측의 해고는 공정하지 못하고 또 해고 근거도 안 된다”며 “A씨는 다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해처 위원장은 또한 자신의 견해임을 전제로 “A씨의 행위를 절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영어라는 언어의 남용”이라며 “마찬가지로 무더운 날 고객 사무실의 수도꼭지에서 한 잔의 물을 따라 마시는 행위, 볼일이 급한 상황에서 사전 허락 없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무단침입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A씨의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했다.
A씨는 최근 IT 분야 석사 과정을 마친 해외 유학생으로, 이전부터 20시간의 허용된 시간만큼 청소원으로 일해 왔다.
해처 위원장은 이번 제소 심의에서 A씨가 ‘일하는 회사(CMC Markets) 관계자와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다’는 증거를 받아들였다.
A씨는 “CMC Markets 사의 직원이 ‘사무실을 청소할 때 회사에 있는 커피를 마셔도 좋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12일, A씨는 평소보다 45분 이른 시간에 자신이 일하는 피크 스트리트 상의 사무실에 도착했고, 자기 업무가 시작되는 오후 6시45분까지 기다리는 동안 동료 청소원과 함께 사무실에 있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A씨와 그의 동료가 커피 컵을 들고 사무실 리프트로 다가갈 때 이들을 본 CMC Markets 직원과 설비 담당자가 ‘그 커피 어디서 나온 것인가’를 물었으며, 직원은 A씨에게 ‘회사에 있는 커피를 마시도록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A씨는 “미안하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당신을 화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CMC Markets 직원은 “OK”라는 말을 했고, A씨는 CMC 직원이 자신의 사과를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CMC 직원은 이 일(사무실 커피를 마신)을 외주 청소회사(Glad Group Pty Ltd)에 통보했고, 청소원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Glad Group Pty Ltd 사의 매니저는 청소원 A씨와 그의 동료를 ‘부정행위’로 해고함으로써 CMC 직원의 불평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나 A씨가 회사의 커피를 허락없이 마셨다고 불평을 터드린 CMC의 직원은 Glad Group과 청소용역 계약을 맺고 있는 원청회사 ‘Investa’ 사의 매니저에게도 레터를 보내 “회사의 커피를 마시는 것을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다만 내가 알지 못한 사이에 마시는 것이 문제”라고 불만을 전달했다.
이번 일에 대해 NSW 청소노조인 ‘United Voice NSW’의 멜 가트필드(Mel Gatfield) 사무총장은 “호주에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 고객 회사의 커피 한 잔을 마셨다고 청소원을 해고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이어 “이번 A씨의 해고 케이스는 호주에서 일하는 청소원들에 대한 형편없는 처우와 착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